습지 장례법

서울독립영화제2021 (제47회)

본선 단편경쟁

신종원 | 2020 | Experimental | Color+B/W | DCP | 14min 55sec (K, E) World Premiere

SYNOPSIS

영상 속 화자가 오래전에 물려받은 조부의 기록물들을 거꾸로 추적해 가면서 조부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조부의 고향인 1960년대 창녕에서 시작해 70년대 구로 공업단지로, 90년대 고척동 주택가와 2000년대 파주 사찰 납골당을 경유해 다시 우포늪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조부의 일생을 정직하게 답습한다. 화자는 기록물에 남아 있는 단서들과 육친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실제 주소지를 찾아가 본다. 구글 어스는 이 장소들에 즉각 방문해 볼 수 있는 접속 링크로 사용된다. 먼 옛날의 지리적 풍경들은 군사위성 시점으로 누그러진 2차원 이미지가 아니라 삼중 굴절된 시간의 결과물처럼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화자는 자신의 시제와 조부의 시제가 연거푸 충돌하는 현상을 경험하며, 죽은 조부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DIRECTING INTENTION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렇게 나 자신의 기원을 2인칭 목소리로 요청해 볼 때, 가장 먼저 주어지는 단서는 이름이다. 한국식 작명 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이름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제각기 존재를 규명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성씨는 한 사람의 기원을 나타내고, 가운데 이름은 친족 내부의 종적 세대관계를, 마지막 이름은 마침내 그의 운명으로 부가된다. 아주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의 후손으로 점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스스로 이름을 폐기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친족집단과의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성씨와 이름, 외모만큼이나 운명도 물려받는가?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죽은 선조들과 다른 운명을 살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해 보기. 죽은 조부에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신종원

신종원

STAFF

연출 신종원
제작 신종원
각본 신종원
편집 신종원, 김민경
음악 김민경
출연 신종원

PROGRAM NOTE

경쾌한 음악에 둥그런 지구가 구글맵을 조정하는 마우스 커서에 따라 노리개처럼 뒹굴뒹굴 돌아간다. 그리고 지구의 한 구석 대한민국으로 줌인하여 내려간다. 줌인에서 다시 좌우로 패닝을 하며 목표물을 찾는다.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길곡리 2-1번지. 누구라도 어딘지 들어 본 적도 앞으로도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을 곳. 그러나 할아버지가 “대체 언제까지 이 따위로 사실 겁니까?”라며 온 집안의 비자금을 훔쳐 달아난 곳. 그래서 감독의 내레이션이 시작되는 곳. 낮고 육중한 목소리로 흉년, 풍년, 집안, 왕조, 분노, 혼란, 슬픔, 핏줄, 혈족, 인신 공양, 정신 격리, 퇴행성 뇌질환 따위의 사특한 단어들의 읊조림이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곳. 습지로 영원히 빠져 들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진을 노려보는 듯 당신의 자손으로 남지 않겠다는 선언을 비장하게 내뱉는 곳. 그래서 영화도 그곳에서 끝나는 곳. 창녕에서 도망친 할아버지의 성공한 인생은 실은 농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의 발전이 아니라 10대 여공과 같은 사람들의 인신 공양으로 지켜진 썩어 빠진 전통임을 폭로한다. 푸티지 영상과 구글맵의 검색엔진으로 혈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할아버지 부곡 아재의 인생이 한국 현대사의 추악한 순간과 뒤엉킨다. 그리고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을 거부하는 감독은 단호하고,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한 시인의 언설마저도 집어삼키고도 남을 기세로 영화는 몰아친다. 그래서 우리가 습지로 처박히기 전까지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있을까?

한재섭 / 서울독립영화제202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