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

서울독립영화제2021 (제47회)

새로운선택 단편

유재인 | 2021 | Fiction | Color | DCP | 22min 59sec World Premiere

SYNOPSIS

우체국 직원이며 시인 지망생인 지영, 출퇴근길에 시집을 읽고 퇴근 후 틈틈이 글을 쓰며 매년 신춘문예에 지원한다. 올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직접 등기우편으로 부치던 날 지영은 업무 중 한 노란색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손글씨로 적힌 옛날식 우편번호와 지번 주소, 얼마 전에도 봤던 익숙한 봉투다. 그러나 받는 곳은 이미 없어진 주소. 반송을 보내지만 얼마 뒤 우체통에 똑같은 봉투가 또다시 들어 있다. 계속 반송되는데도 미련하게 편지를 보내는 발신자는 누굴까? 무슨 내용일까? 지영은 마음이 쓰인다.

DIRECTING INTENTION

예술 작업과 편지를 쓰는 일에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시를 쓰는 일은, 그리고 편지를 쓰는 일은 깜깜한 마음속을 더듬어 찾아낸 진실된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담는 일이다. 성실하게 눌러쓴 편지를 아무도 읽어 주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글 쓰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보낸 편지가 거대한 우편물 속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폐기된다면 언제까지 계속 쓸 수 있을까? 주인공 지영이 길 잃은 편지의 ‘보낸 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영 자신이 글 쓰는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기록되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감당하고 있는 모든 무명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나의 답장이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유재인

유재인

2017 해피해피쿠킹타임
2019 어떤이

STAFF

연출 유재인
제작 강은정
각본 유재인
촬영 박광수
편집 유재인
조연출 배지택
음악 이지민
미술 장은선
출연 윤서정

PROGRAM NOTE

글을 쓰는 행위란 매일같이 발신해도 수신되지 못한 채 반송되어 쌓이는 편지를 바라보는 기분일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쓰는 일’을 그렇게 정의한다. 지영은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며 퇴근 후 집에서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시가 얼마나 좋은지 출근길 정류장에서 남들이 무료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을 읽고,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자작시를 넣은 서류 봉투를 신문사에 보내려고 소중하게 품에 안은 채 우체국에 간다. 언제면 당선 소식이 발표될까, 기대감과 초조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영은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날 주소와 우편번호가 적혀 다시 돌아오는 타인의 편지에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편지가 전달되지 못한 건 그 주소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를 알리려 지영은 직접 발신인의 주소를 찾아 반송된 편지를 돌려주기로 한다. 그런 마음을 먹은 건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한 실망감을 떨치고 싶어서였다. 쓰는 일, 그중에서 시를 창작한다는 건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진 일이라서 혼자만의 싸움과도 같다. 그럼에도 가닿을 수 있는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바로 쓰는 일의 근본이다. 그건 영화와 같은 창작하는 일에 모두 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쓰는 일>은 감독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의 창작자들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와도 같다.

허남웅 / 서울독립영화제202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