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서울독립영화제2017 (제43회)

경쟁부문 장편

박배일 | 2017 | Documentary | Color | DCP | 89min (K, E)

SYNOPSIS

쏟아질 것 같던 별이 해가 뜨며 사라지고, 등 굽은 의선이 유모차에 의지해 마당을 느린 걸음으로 돈다. 순분은 깨를 심고, 밭에 난 풀을 뽑고, 감자를 캐며 하루 종일 땀을 흘린다. 금연과 상희는 작은 수풀이 만들어낸 그늘에 앉아 중참을 먹으며 까르르 이야기를 나눈다. 회관에서는 여럿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화투를 치고, 새근새근 낮잠을 청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소성리의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세 살배기 아들을 마음에 묻은 금연, 잃어버렸던 이름을 찾기 위해 가부장제와 싸웠던 순분, 지독히 가난했음에도 나눔을 즐겼던 의선의 희로애락이 산과 숲으로 삼연한 소성리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빵을 팔았던 마을회관과 한국군이 주민들을 학살했던 마을 입구, 그 시체를 파묻었던 계곡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상흔이다. 마을 사람들은 질곡의 역사와 고단한 삶을 부둥켜안고 서로의 일상을 지탱하며 살았다.
2017년 4월 26일, 소성리는 경찰의 군홧발과 미군의 비웃음으로 사드가 배치되며 평화로웠던 일상이 무너졌다. 전쟁을 막겠다고 들어온 사드는 소성리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소성리 주민들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아스팔트 도로 위에 눕는다.

DIRECTING INTENTION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호사스럽지는 않지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면서 마을이 전쟁터가 되었다.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민들은 마음 속 깊이 싸매고 있던 감각의 봉인이 해제됐다. 전쟁을 경험하고 이후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빨갱이 프레임 속에서 평생을 숨죽인 채 살았던 소성리 주민들, 그들에게 ‘전쟁’과 ‘안보’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다. ‘사드’는 소성리 주민들에게는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 봉인 돼 있던 전쟁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문이었다. 그 문은 전쟁 이후 가난과 불안을 재 감각하게 하는 무서운 통증의 시작이다. 한동안 꾸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악몽을 다시 꾸게 만드는 고통이다.
영화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 새겨진 개인의 삶과 전쟁의 상흔을 따라간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침묵하며 평생을 살아왔던 이들의 마음 속 풍경을 들여다보고, 평화를 바라는 그들의 의지를 담담히 담는다.

FESTIVAL & AWARDS

2017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

DIRECTOR
박배일

박배일

2010 <잔인한 계절>

2011 <나비와 바다>

2013 <밀양전>

2014 <밀양아리랑>

2016 <깨어난 침묵>

 

STAFF

연출 박배일
제작 오지필름
프로듀서 주현숙
촬영 박배일, 권영창, 최승철
조연출 권영창
편집 박배일
음악 아완
음향 김병오, 정성환
색보정 임학수
출력 최현아
출연 김의선, 도금연, 임순분

PROGRAM NOTE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에 관한 두 편의 영화, <밀양전>(2013)과 <밀양아리랑>(2014). 그리고 지난해 서독제에서 상영되었던 부산 지역 탁주 산업 노동자들에 관한 기록 <깨어난 침묵>(2016)을 기록했던 박배일 감독의 카메라가 이번엔 성주 소성리로 향했다. 조용하던 농촌 마을에 불현듯 출몰한 미국의 군사 장비와 서북청년단의 폭력이 흡사 한국전쟁의 악몽처럼 소환되는 그곳, 칠순을 훌쩍 넘은 할머니들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거침없이 공권력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그곳. 박배일 감독은 이 영화 <소성리>에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촌로의 일상에 카메라를 비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제는 늙어버린 육신이 감당하기 고된 농촌의 노동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왔던 기나긴 시간들에 새겨진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상흔들.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시위 현장에 서 있는 할머니들은 군부대의 이동과 하늘에 굉음을 일으키는 비행기들, 그리고 완장을 다시 차고 나타난 서북청년단의 위압적인 시위와 언동들 속에서 한국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공포, 불안을 떠올린다. 영화 <소성리>는 아주 사적인 개인의 일상과 감정 속에 어떻게 공적인 역사와 폭력이 가로지르고 재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늘 소외됐던 농촌의 할머니들이 어떻게 삶의 주체로서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지를 주목하고 기록한 작품이다.

정지연 / 서울독립영화제2017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