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사라지지 않는

서울독립영화제2021 (제47회)

장편 쇼케이스

허철녕 | 2021 | Documentary | Color+B/W | DCP | 92min 48sec (K, E)

SYNOPSIS

서구에서 흔히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쟁. 그 별명처럼, 전쟁기에 벌어진 전쟁범죄에 대한 진상 조사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과거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시작되었으나, 여러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조사기구는 해체된다. 2014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뜻있는 시민들이 직접 유해 발굴을 시작한다. 직업도 사는 곳도 모두 다른 발굴단원들의 공통된 목표는 오직 하나, 인간을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온전히 갖고 있는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매장지에서 마주한 현실은 발굴단의 예상을 넘어선다.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어 버린 유해, 얽히고설켜 누구인지 분간조차 어려운 뼈 뭉치들, 토지 개발로 완전히 훼손된 학살터 등 발굴단은 매 순간 복잡한 상황을 마주한다. <206: 사라지지 않는>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발굴 여정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은 사건을 현재로 소환하여 상흔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자국을 살피고 ‘기억하기’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DIRECTING INTENTION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의 학살터는 나무와 꽃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들과 곤충 같은 작은 미물들이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어 평화롭다. 그러나 일단 지표면의 흙을 얇게 걷어 내면 우리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사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명확하지 않은 생존 유족들의 증언, 신원을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의 뼈 뭉치들, 침묵으로 일관하다 너무 늦게 찾아오는 바람에 더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가해자들의 부존재에 의해 그 진실은 언제라도 부정당할 수 있는 허약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된다. 이쯤 되면 발굴도 영화도 둘 다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만, 허약한 진실의 토대 위에서 그래도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어떤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다. 유해가 드러난 학살터는 참혹하지만 한번 유해를 걷어 낸 뒤 정돈된 발굴 현장은 그 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거대한 음각 판화를 연상시키며 기하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비록 유족들은 발굴을 통해 가족을 찾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였을 타인의 뼈를 수습하며 거꾸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어루만졌다. 눈물보다는 농담과 웃음이 더 많았던 발굴 현장의 하루하루와 각자의 삶 속에서 겪은 누군가의 죽음을 고백했던 발굴단원들의 모습은 가장 비인간적인 땅 위에서 가장 인간적인 기억으로 나에게 남아 있다. 이런 보잘것없는 아름다움들을 통해 나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성찰할 때만이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FESTIVAL & AWARDS

2021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DIRECTOR
허철녕

허철녕

2012 옥화의 집
2017 말해의 사계절
2021 마인드 룸

STAFF

연출 허철녕
제작 조소나
각본 허철녕
촬영 허철녕
편집 이학민
음악 이민휘
사운드 고은하
출연 김장호, 김광욱, 박선주, 안경호, 홍수정, 노용석, 임영순, 김나경, 김소현, (故)김말해

PROGRAM NOTE

기억과 망각은 본래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망각이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기억 역시 언제나 진실과 오류 어딘가에 놓여 있다. 1950년에서 1953년까지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려 70만 명의 양민이 남북한 군인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다. 수많은 시신이 산천에 포개져 있으나,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참사를 겪었는지 알 수 없고, 발굴된 유해는 극히 드물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망각의 역사를 거슬러 진실의 신체를 찾고자 하는 시민 활동의 기록이다. 2000대 초 출범한 관련 국가기구의 활동이 종료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을 꾸린다. 다큐멘터리는 역시 일원이 되어 다양한 영화적 방식으로 국가 폭력의 현장에 동참한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故 말해 할머니와 대화하며 차가운 사건에 정서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카메라는 시간을 초월하는 시선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넘나든다. 예를 다해 흙을 털고 부서진 뼈와 유품을 매만지며 역사를 되살리는 사람들. 숭고한 실천과 행동에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김동현 /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