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몽

서울독립영화제2021 (제47회)

본선 단편경쟁

권순현 | 2021 | Documentary | Color | DCP | 38min 35sec (E)

SYNOPSIS

내게 촛불은 매혹이었다. 세상에 마침내 종말이 찾아온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했다. 광장의 사람들은 웃고 울고 소리쳤다. 내 손안의 작은 열기 덕분에 종말 이후 찾아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에 매혹당하여, 나는 촛불을 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광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DIRECTING INTENTION

이 영화는 내가 촬영하지 않은 세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세 사람은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반복된 세 번의 촛불집회에서 각각의 실패를 겪었다. 그 누구보다도 촛불의 힘을 믿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침묵과 증발을 택했다. 나의 좌절과 실패 역시, 그들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현실의 종말은 내가 2016년 겨울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종말은 시끄럽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표정을 가린 사람들과 차가운 침묵 속에 종말은 찾아왔다. 설령 촛불이, 촛불이 보여 준 종말이 단순한 매혹이었을지라도. 다시금 거짓된 종말을 복기하고 꿈꾸는 일은, 이미 찾아온 지금의 종말에 대한 작은 저항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끝없이 상상하고, 필사적으로 기억하는 일.

FESTIVAL & AWARDS

2021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단편경쟁 심사위원특별상
2021 제21회 전북독립영화제
2021 제24회 도시영화제

DIRECTOR
권순현

권순현

2016 골목의 이야기
2019 례

STAFF

연출 권순현
제작 망부석필름
각본 권순현
촬영 권순현, 고은양
조명 권순현
음악 갓모드
D.I 권순현
출연 익명, 김기보

PROGRAM NOTE

<농몽>은 지난 20여년의 세월 동안 각자 다른 방식과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오가는 영화다. 하지만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지 못했기에, 감독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들이 남긴 말들을 끌어모아 영화를 한 조각 한 조각 완성해 나간다. 영화가 그렇게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동안 관객은 ‘촛불의 추억’ 다섯 번째 참여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촛불은 꿈인가. 흘러간 과거인가. 이제 촛불도 지겨우니 영화 속에서 얘기하듯 비눗방울 같은 걸 광장에 날리는 상상을 해야 할 때인가. 1980년대의 집회 현장을 가득 채우던 최루탄 가스 대신 광장이 촛불로 채워지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 촛불집회는 문화가 되었고 이후 정권 교체를 이뤄 낸 시민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가 되었고, <농몽>은 오프닝과 엔딩에서 반복하며 촛불은 끝났다고, 꿈이었다고 한다. 감독의 말처럼 이제 광장은 텅 비었고, 각자의 방 속에서 천천히 세상은 조용히 끝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그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 “기억은 남아 있어. 우리는 꼭 살아남자.”
2022년이 오고 있다. 촛불이 농몽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신아가 / 서울독립영화제202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