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맛

단편 쇼케이스

유최늘샘 | 2022 | Documentary | Color | DCP | 12min (E) World Premiere

SYNOPSIS

한 채 초당에 모두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방팔방 나그네 발길을 모셔 온 스무 해. 오늘은 이 초당에 미륵섬 녹차밭에서 딴 찻잎을 들였나니, 차는 아랫목 사람은 윗목. 우리는 나란히 따로 또 같이 서서히 서서히 익어 가는 중.

DIRECTING INTENTION

상처를 내야 한댔다. 상처가 많을수록 클수록 찻물이 많이 우러난다고. 찻물이 자꾸자꾸 우러나야 잘 만들어진 좋은 차라고 비비고 또 비비랬다. 사람은 참 벨짓을 다 한다.

DIRECTOR
유최늘샘

유최늘샘

2008 노동자의 태양
2014 늘샘천축국뎐
2021 지구별 방랑자

STAFF

연출 유최늘샘
각본 유귀자
촬영 유최늘샘
편집 유최늘샘
제작지원 한솔, 덕산
출연 유귀자, 최정규

PROGRAM NOTE

동명 제목의 일본 극영화와 다르게 유최늘샘 감독의 <녹차의 맛>은 다큐멘터리다. 이른 새벽잠에서 깬 노부부가 산으로 올라가 찻잎을 따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까지의 과정이 12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전개된다. 굉장히 단순한 구조이지만, 발효차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그렇다. 차나무 잎을 따서 체에 펼쳐 올리고 차로 만들 수 있는 잎을 골라 면에 싸서 얼마간 숙성한다. 그것을 다시 풀어 헤쳐 손으로 뭉쳤다 펴기를 반복한 후 장작불로 데워 둔 방의 아랫목에서 말린다. 그렇게 잎차의 형태를 갖추면 정량을 재서 봉투에 담아 보관한다. 단순노동처럼 보여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반복의 과정에서 최고의 차가 탄생한다. 바로 그 심심한 듯한 단순함이야말로 진정한 ‘차의 맛’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구조로서 형상화한다. 포장을 마친 노부부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듯 자신들이 만든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듯 차를 마신다. 그 맛과 향이 어떤지 스크린을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이거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차를 마시기 전 찻잔 주위로 아지랑이 피듯 풍기는 노동의 신성함이 담긴 향을 맡고 첫 모금을 입에 머금은 동안에는 차를 마시기까지 찻잎을 제조한 그 시간을 음미한다. 결국, 차를 마신다는 건, 맛을 본다는 건, 자연을 받아들이고 자연과 하나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허남웅 / 서울독립영화제2022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