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나

장편 쇼케이스

이승찬 | 2022 | Fiction | B/W | DCP | 68min 18sec (E)

SYNOPSIS

혜원은 어느 날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군산으로 내려간다. 군산에서 혜원은 죽은 동생이 사랑했던 유진과 하룻밤 동안 같이 걷게 된다. 동시에 혜원은 자신의 애인과도 하룻낮 동안 바다를 보러 돌아다닌다. 이 두 세계에서 혜원은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이 영화는 망각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망각은 절대 능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것이죠. 그렇기에 망각한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그 대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잊기 위해 기억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 미련한 과정을 같이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DIRECTOR
이승찬

이승찬

STAFF

연출 이승찬
제작 박창민
각본 이승찬
촬영 최윤주
조명 최윤주
편집 이승찬, 이승희
음악 박에녹
미술 정혜욱
출연 박가영, 이한주, 유시형, 권다함

PROGRAM NOTE

쓸쓸한 가을도 아니고 추운 겨울에 만나자니. 에리크 로메르의 <녹색광선>의 북미 제목은 ‘여름’인데, 한겨울에 ‘녹색광선’ 얘기를 문득 꺼내는 영화가 이상할밖에. 영화의 도입부는 그러하다. 뺨에 댄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그는 말한다. “맞아, 밖에 너무 추워.” 다음 장면에서 그녀를 등에 업은 채 커피를 내리면서 그는 말한다. “계속 거기 있을 거지?” 다정다감한 남자한테 여자는 미소 한 번 안 지어 줄 정도로 무뚝뚝하다. 그녀, 혜원이 행여 미워 보였다면 69분 장편영화를 마저 볼 일이다. 서울과 군산, 아침과 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땅과 바다, 따뜻한 커피와 아이스아메리카노, 그리고 세 명의 인물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조금이라도 가닿으려는 몸짓이 바로 <겨울에 만나>다. 죽은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려고 군산을 찾은 혜원의 이야기. 영화가 혜원을 <8월의 크리스마스> 속으로 괜히 끌어들이는 게 아니다. 그녀는 세 개의 로드무비 각 지점에서 세 남자와 다른 온도의 대화를 나눈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진실 주변을 맴돌고, 아는 것과 숨겨진 것은 서로의 영역 사이로 들어갔다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풍경을 바라볼 때면 무심하게 소리를 지우는 영화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는 걸까, 풍경의 침묵을 보라는 걸까. 차가운 겨울, 따뜻한 햇살 아래 앉으면 얼굴은 따스한데 손은 시린,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 그런 느낌을 전하는, 단정한 구도의 흑백 스크린에 담긴 정연(精姸)한 영화다.
이용철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