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건네는 바보 같은 질문 “산신령을 믿으시나요?” 이에 대한 대답을 통해 신화와 종교와 마을에 관한 제각기 다른 생각들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예술가들은 천장산의 산신 할매를 위해 재기발랄하게 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 시대에 산신령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맥이 끊길 뻔했던 마을의 산신제를 이어받아 3년째 치르고 있는 동네 예술가들. 사람들이 품고 있던 공동의 환상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제는 낡아빠지고, 유치하게 여겨지는 산신령을 살려내고 싶다. 예술로서 그 환상을 창조해 보려 한다.

World Premiere

“산신령을 믿으시나요?” 도대체 뭐 이런 질문이 다 있다 싶다.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서진 감독은 진심이다. “나는 왜 천장산 산신제에 사로잡힌 것인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 감독은 천장산을 오르는 등산객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산신령의 존재 여부를 묻는다. 산에 오르던 할아버지는 “산신령 그런 거 없어요. 허허허” 헛웃음 지으며 슬금슬금 감독에게서 뒷걸음질 치는가 하면, 어느 아주머니는 “그리스도 믿어요, 하느님이 최고예요” 신의 우위를 가르고, 배드민턴 치던 동호회 회원들은 “그런 거 몰라요, 나가요” 감독을 방해꾼 취급한다. 그 와중에 천장산과 산신령에 관해 드러나는 사실들, 가령 안기부의 터가 들어서 한때 접근하기 힘들었다든가, 원래 산신령은 여자였는데 조선 시대에 남자로 성별이 바뀌었다든가, 천장산이 들어선 장위동 일대에 재개발 문제로 주민들끼리 갈등을 겪었다든가 하는 등등의 사회, 역사적 흥미로운 내용들이 밝혀진다. 잉여력의 질문인 줄만 알았는데 인터뷰가 이어지고 조사가 거듭될수록 이 프로젝트는 천박한 자본주의로 인한 계산적인 삶과 관계의 파괴 등이 일상이 된 지금, 관계를 복원하고 문화를 재생하는 의미로까지 나아간다. 감독과 지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동안 끊겼던 산신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복원하더니 여기에 주민들까지 합세하면서 마을 잔치로 거듭난다. 젊은 세대 감독과 어른 세대 주민 간의 화합이 이뤄지는 현장을 보고 나면 잉여력이야말로 이 각박한 사회를 구원할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아니 쓸모 있는 상상을 하게 한다.

허남웅 / 서울독립영화제2023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