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와 가깝지만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작은 산골 마을. 코로나 위기가 끝나 가자 마을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겠다는 주민 설명회가 열린다. 야영장이 생기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회사 측 설명에 대해 주민의 반대 의견이 이어지자 회사는 주민을 설득하기 위한 묘수를 고안해 낸다.

2023 제67회 BFI런던영화제 작품상
2023 제7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루라-그린피스상
2023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상
2023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누군가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다면 하마구치 류스케만큼 적합한 연출자는 없을 것이다. 하마구치 영화의 특별한 긴장은 대화가 진행되던 도중 불쑥 부정문이 침입하는 순간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해피 아워>의 북토크 현장에서, <아사코>에서 친구의 연기를 보고 누군가 혹평을 늘어놓는 순간에, <우연과 상상> 3부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를 집에 데려왔을 때, 그의 인물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야. 거절과 부정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진실에 의심을 가하고 영화적 이미지의 표면에 불투명한 혼란을 드리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문의 작가’로서 하마구치의 역량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영화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타쿠미와 어린 딸 히나, 그들 주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기 위해 파견된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다. 인물들의 말과 침묵하는 풍경, 기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대립과 공존, 수직의 형상과 수평의 운동, 실종과 재회의 사건이 섬뜩한 유머와 나른한 긴장감을 타고 이어진다. 미스터리는 영화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인도한다. 두 남자와 침묵하는 여자(소녀), 자동차, 설원이라는 익숙한 조합을 질료로 삼지만, 예측 가능한 결론에 도착하는 대신 이미지를 향한 또 다른 ‘부정’을 실천하는 하마구치의 날카로운 변주가 스크린에 새겨진다. 202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김병규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