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같은 듯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1부 민주는 의상학과 졸업반으로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있다. 2부 승주는 오디션을 앞둔 배우 지망생이다. 3부 혜정과 아들 동민은 이들의 고향인 시골 마을 운천으로 향한다. 이들은 각 챕터의 끝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를 발견한다.

어머니와 나는 두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두 편 모두 어머니는 본인 자신의 역을 소화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가 도달한 방식은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2023 제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2023 제19회 멕시코몬테레이국제영화제
2023 제3회 JEOLLA누벨바그영화제

1부의 민주는 의상학과 졸업을 앞뒀고, 2부의 승주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배우 지망생이며, 3부의 영화감독 동민은 어머니 혜정과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크고 작은 영향 아래 있고 그의 흔적을 떨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자신의 닮은 구석을 발견한다. 이 세 개의 이야기는 독립적이기보다는 서로 긴밀하게 이어지고 앞선 이야기를 기단 삼아 점진적으로 나아가며 고유의 동력과 구조를 축조한다. 정확히 일치하지도, 완벽히 다르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 그대로 공명하는 세 개의 장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인물, 한 사람의 서로 다른 판본처럼 보이더니 끝내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 사이 인물들이 들려주는 아버지 서사는 너른 교집합을 이루고 거울처럼 서로를 비출 것이다. 인물의 말과 상황이 다음 장의 또 다른 인물에게서 약간씩 변주돼 되돌아올 때의 묘한 기시감은 영화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특히 신동민 감독과 실제 그의 어머니인 김혜정이 함께 만든 영화에 관해 말하는 3부의 극적 설정은 영화가 견지해 오던 내적 공명을 넘어서서 영화가 영화 밖 세상과 교접해 또 다른 차원의 공명으로 이어진다.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가 출발한 이유라고 해도 좋을 부재하는 아버지, 당신, 형언할 수 없으나 어딘가에 생기할 그 에너지를 형상화한다. 망자를 향한 원망과 한탄의 기색은 거두고 환혼의 영화와 의연하게 마주하기. 어느새 당신 앞에 도착해 소리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이것은 당신으로부터의 기척이다.

정지혜 / 서울독립영화제2023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