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꿈의 나라

서울독립영화제2019 (제45회)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이은, 장동홍, 장윤현 | 1989 | Fiction | Color | DCP | 84min

SYNOPSIS

광주민중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된 이후 종수는 계엄당국의 수사를 피해 고향의 형 뻘 되는 태호를 찾아 동두천으로 온다. 그는 전남대의 학생이며 야학의 교사이며 광주항쟁에서의 활동 때문에 쫓기는 신세다. 태호는 미군부대의 스넥 바에서 일하지만 실제 본업은 미제 물건장사이다. 한 몫 벌어 미국으로 떠버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태호와 미군 때문에 거칠 대로 거칠어진 양공주들과의 생활에서 종수는 동화되지 못하며, 한편으로는 광주항쟁의 기억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돈과 미국을 목표로 PX 뒷거래까지 마다하지 않는 태호와 마치 미국에 가면 새로운 삶이 열릴 것처럼 생각하는 양공주들 속에서 종수는 야학학생인 구두닦이 구칠을 떠올린다. 마치 미국을 천국처럼 생각하는 그들과는 다르게 구칠은 자신과 함께 항쟁의 동지가 된 이후에도 끝까지 싸울 것을 고수하고 민주주의를 기원했다. 종수의 계속되는 기억은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그를 짓누르고 그의 고민과는 또 다르게 주위 사람들의 인생은 고통으로 물들어간다. 한 몫 벌어 미국으로 가버리겠다던 태호는 자신과 거래를 해오던 스티브에게 배신을 당해 모든 것을 잃고, 그와 마찬가지로 스티브와 함께 살 생각에 가슴 부풀어하던 제니 또한 스티브의 배신에 자살을 한다. 분노한 태호와 망연자실한 종수는 어떠한 일도 도모하지 못한 채 다시 억눌리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DIRECTOR

이은, 장동홍, 장윤현

 

이은
1989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
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장동홍
1987 <그날이 오면>
1987 <노란 깃발>
1990 <파업전야>
1998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2009 <이웃집 남자> 

장윤현
1990 <파업전야> 
1997 <접속> 
1999 <텔미썸딩> 
2004 <썸> 
2007 <황진이> 
2011 <가비>
2014 <평안도>

 

STAFF

연출 이은, 장동홍, 장윤현
제작 낭희섭, 이재구
각본 공수창, 홍기선
촬영 김현철, 박대영, 오정옥
조명 임태형, 장재기, 정성진
음악 강헌, 조익환
기록 정유식
출연 홍정욱, 박충선, 오지혜, 차선경, 김선경, 김현주, 이병수, 정진완

PROGRAM NOTE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과 그것의 원인을 사실주의적인 양식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종수는 고향인 광주를 떠나 동두천에 살고 있는 고향 선배 태호를 찾아간다. 종수는 전남대학교 재학 중 동아리와 야학 활동 등을 통해 학생 운동에 헌신했지만, 사회 변혁을 꿈꾸던 그의 이상은 광주를 점령한 공수부대의 반인륜적인 폭력으로 인해 산산조각 난다. 그의 몸은 광주를 떠나 있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광주에 붙들려 있다. 밤이 되면 군인들의 진압봉과 군홧발에 짓밟힌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고, 낮이 되면 미군 기지에 종속된 동두천의 모습을 통해 미국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당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깨닫는다. 그의 낮과 밤은 악몽의 연속이며, 마치 신들에게 벌을 받는 신화적인 인물처럼 항상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영화는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 봉기를 중요하게 다룬다. 다만, 광주의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을 비교적 단순화하는 우를 범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최초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은 반민주적인 군부 세력에 저항했던 대학생이었지만, 계엄령이 선포된 다음부터 저항의 단위는 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 가정주부,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으로 확장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다자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그것을 포함하는 일자로서의 민중이 봉기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오! 꿈의 나라>의 일부 장면에는 운동의 주체를 대학생과 구두닦이로 구분되는 두 유형의 집단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전자가 후자를 계몽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민중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민중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예를 들면, 광주의 구두닦이와 동두천의 성매매 여성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권력의 전횡에 의한 죽음으로 상징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살아남은 지식인 남성 종수의 반성과 각성을 위한 영화적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연출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 캐릭터들의 허망한 죽음에서 광주의 비극을 암시하고 나아가 그것이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부분은 이 영화가 거둔 성취다. 종수가 숨어 지내는 동두천은 지리적으로 광주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곳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으며 또한 그 지역은 미국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광주와 유사하다. 광주의 또 다른 버전이 동두천이라면, 광주 구두닦이의 죽음은 동두천 성매매 여성의 죽음의 전조로 볼 수 있다. 그렇게 광주의 비극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반복된다. 장산곶매는 민중이 핍박받는 역사가 반복되는 상황에 맞서기 위해 저항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오! 꿈의 나라>에는 “싸움은 이제 시작됐어”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그 대사는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작품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분위기를 반영한 <파업전야>(1990)에서 되풀이된다. 결국 장산곶매의 영화적 태도는 민중의 역사를 다시 쓰고, 고쳐 쓰면서 나날이 갱신하는 셈이다.

이도훈(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