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마리아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37회)

국내초청(장편)

경순 | 2011| Documentary | Color | HD | 98min

SYNOPSIS

한국, 일본, 필리핀에는 다양한 직업과 역사를 지닌 많은 여성들이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들 중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위안부 등으로 불리는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녀들은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은 제각기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한 가지 공통점에 의해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들의 몸과 노동이 바로 그 것. 어떻게 서로 다른 노동이 그토록 비슷한 방식으로 ‘몸’에 연결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사회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노동의 의미’가 그것이다.

DIRECTING INTENTION

이 영화는 여성의 몸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으며, 그 곳에서 그녀들은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서 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의 몸은 노동의 수단 또는 상품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오염된 몸으로 간주되며, 그리하여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레드마리아>는 가장 낮은 곳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이 여성들의 신체를 기록하고, 그리하여 여성과 노동의 관점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의 사회적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FESTIVAL & AWARDS

2011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한국영화부문 심사위원특별언급

DIRECTOR
경순

경순

1999 <민들레 (공동연출)>

2001 <애국자게임 (공동연출)>

200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06 <쇼킹패밀리>

STAFF

연출 경순
제작 빨간눈사람
촬영 경순, 아람
편집 경순
음향 표용수, 고은하

PROGRAM NOTE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듯, <레드마리아>는 필리핀, 한국, 일본, 세 나라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엄마로, 창녀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주 여성으로, 위안부 할머니로 불리는 이들은 제각각 다른 경험과 삶의 역사를 가진 여성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여정과 같은 영화는, 제각기 다른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두 가지 화두를 드러낸다. 그 화두란 다름 아니라, 전지구화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몸과 노동이다.
여정의 시작은 필리핀 마닐라의 도시빈민촌 톤도, 철거 직전인 동네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의 일상이다. 재개발 명목 아래 생존권을 위협 받는 이들의 처지는, 집창촌의 철거에 맞서 싸우는 평택 민주성노동자연대모임의 현실과도 상통한다. 또한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편견에 상처 받는 이들의 모습에는, 다시 필리핀의 성매매 여성 쉼터 부클로드에서 생활하는 어린 성노동자들의 실정이 겹쳐진다. 그 연장선상에서, 순결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멸시가 두려워 오랫동안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는 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모임 말라야 로라스의 이야기 또한 제시된다.
애초에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위안부와 성노동자는 다르게 이해되곤 하지만, 과연 다르기만 한 것일까?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가부장적 편견의 피해자란 맥락에서 양자를 이해하는 이 지점은 몸과 노동이라는 두 화두의 연결고리가 한층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본과 권력, 이를 지향하는 교육의 연쇄 체계 안에서 제대로 가진 것, 배운 것 없이 몸이 자산의 전부나 다름없다면, 과연 노동의 유형과 조건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맹이거나 장애가 있으면, 혹은 사회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노동시장의 경쟁구조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 느껴져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한 일본 노숙인의 이야기는, 그러한 선택의 여지에 대한 회의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맞서 일할 권리를 되찾고자 지난한 투쟁에 나선 한국 기륭전자와 일본 파나소닉의 비정규직 노동자, 일은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존중 받지 못하는 일본의 남미계 이주 노동자,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면서도 무임금 노동이란 이유로 그 노동의 가치조차 인정받기 어려운 가사 노동자. 노동시장의 사각지대 또는 주변부로 깊숙이 파고드는 <레드마리아>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각도에서 조명하며, 이윤 추구의 기치 아래 자본주의 체제에서 확대 재생산돼온 노동의 개념과 의미를 반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아니면 무엇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가? 노동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며, 무엇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가? 결국 이러한 질문의 과정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왜곡돼온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수단 또는 상품 그 자체가 되곤 하는 몸의 가치를 되짚어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리, 출산 등 여성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노동이 시작되는 배를 자랑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이미지는, 여성의 몸과 노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고, 물질만능주의적 가치에 따라 저울질되는 인간의 몸과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하고 하는 바람을 상징하는 듯하다. 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개개인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생산 수단이나 상품이기 이전에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전제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레드마리아>는, 영화 속에 흐르는 노래 가사처럼 “높이 뛰고 멀리 날지 못한다 해도 손 내밀어 함께 가는 세상”을 향한 진심이 빛나는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