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서울독립영화제2016 (제42회)

특별초청 단편

고재홍 | 2016 | Documentary | Color | DCP | 21min 23sec

SYNOPSIS

한 영문학과 교수가 내게 말했었다. ‘문학이 삶의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사회의 풍경 속엔 수업 시간에 배웠던 문학의 문장들이 겹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길을 잃었고 답답한 마음에 교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DIRECTING INTENTION

어느 날 신문을 펼쳤다. ‘20대 조울증 환자 급증’, ‘해마다 신입생의 음주로 인한 사망 증가’, ‘한 고시생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직장인들의 다리 사이로 더덕 껍질을 벗기던 할머니가 공무 요원에게 끌려가고 요한 계시록을 나눠주던 여자가 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을 꿨다.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 서 있는 꿈이었다. 어떤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삶은 어리석은 자에 의해 쓰여 졌다’, ‘당신들은 길을 잃은 세대요’, ‘모든 것이 허무 그리고 허무 그리고 허무였다.’ 대학교 시절 영문학 시간에 배웠던 문장들이었다.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것과 과거에 읽었던 것들을 부딪쳐 보고 싶었다. 그것을 통해 길을 찾고 싶었다.

FESTIVAL & AWARDS

2016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 제21회 인디포럼

DIRECTOR
고재홍

고재홍

2013 <자기만의 방>

2014 <네모빛>

STAFF

연출 고재홍
음향 이주석

PROGRAM NOTE

감독은 삶 속에서, 문학의 문장들을 발견한다. 헤밍웨이가 1920년대 전후 붕괴된 사회와 인간들에 느낀 허무를, 2016년 현재 어찌 보면 전쟁도 없는 ‘평온한’ 시대에 느끼는 것은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감독이 채집한 영상 속 어지러운 세상만큼, 그의 마음도 혼란스럽다. 학원가에서 발견한 글귀는 말한다. ‘오늘 조금 힘들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꿈과 미래는 강인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허무를 느끼고 헤매는 까닭은, 나약한 인간이라서일까. 그의 불안과 고민은 꿈에서도 이어진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속에서도 자신의 죽음이 자살로 오인될까 걱정하고, 우는 어머니를 두고 불꽃을 촬영하러 나간 꿈에서 불꽃은 끝내 터지지 않은 채 멈추고 만다.
‘문학이 삶의 지도가 되어줄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을 되새기며, 감독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찾는다. 아직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남아있다는 믿음도. 이내 영상에서는 꿈속에서는 끝내 터지지 않아 불안하게 했던 불꽃이 아름답게 터지고, 아이들은 환호한다. 18년 만에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날, 감독은 화면 가득 크고 환한 보름달을 담는다. 지금 현재 우리가 발 디딘 허무의 세계에서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주듯이.

음소정 / 서울독립영화제2016 운영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