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독립영화제의 슬로건은 ‘어제와 다른 세계’입니다. 확실히 2020년에 우리가 만난 세계는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런 희한한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에 선정된 열두 편의 장편영화를 보는 마음은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명했습니다. ‘영화’라는 본질만 오롯이 남은 영화제에서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와 일곱 편의 극영화를 심사위원들은 소중히 관람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영화는 만들어지고 소수지만 관객과도 만났습니다. 그래서 더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열두 편의 작품들에는 어두운 세계 속에서도 빛나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극영화에서 그 얼굴은 킥보드를 타는 열두 살의 여자아이이기도 하고 세계의 끝을 찾아 나서는 중학생 친구들이기도 했으며 서로 딴 곳을 바라보지만 한 곳으로 통하는 이복형제이기도 했고, 먼지로 그림을 그리는 노숙자이기도, 소시지를 열심히 볶는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갓 출산한 양의 새끼를 바라보는 남자이기도, 마침내는 고라니와 마주치고 멈춰서는 두 여자의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 얼굴은 오필리어를 연기하는 재춘언니이기도 하고, 베어나가는 꽃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얼굴이기도, 무릎 꿇고 오열하는 어머니들의 얼굴이기도 했으며 술에 취해 다음 영화의 내용을 읊는 남자이기도, 추석에 모여 왁자지껄 화투를 치는 대가족의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찍은 다큐멘터리의 시선들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찍었을 극영화들을 다 보고 우리는 각자의 파이널리스트를 나눴습니다. 공교롭게도 심사위원들의 파이널리스트는 일치했습니다. 그 파이널리스트 안에서 좀 더 깊은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작품들에 다 상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고 이 자리를 빌려서 본선에 선정된 모든 작품들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올해의 대상작은 이란희 감독의 <휴가>입니다. 한 노동자의 짧은 휴가를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주인공을 오롯이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말은 서툴지 모르지만, 몸으로는 못 해내는 게 없는 노동자를 따라가며 결국 그가 우여곡절 끝에 딸들과 동지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 기어이 눈물을 쏟게 만듭니다. 영화는 끝까지 나아가 결국 다시 거리에 서는 노동자를 보여줍니다. 물러서지 않는 감독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이봉하 배우의 담백하고 살아있는 연기로 재복의 상태와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최우수장편상은 조은 감독의 <사당동 더하기 33>입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영화는 33년간 한 가족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4대 가족의 33년을 사회학자인 조은 감독은 찬찬히 조망합니다. 계급의 대물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영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정금선 할머니 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의 캐릭터는 생동감 있고 강인해서 감동적입니다. 촬영자가 촬영 대상과 관계 맺기를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볼 것인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수작입니다.
심사위원 특별 언급은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지 않을 도리가 없는 영화입니다. 어머니들의 존재와 힘으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그 과정을 감독은 오랜 시간 공들여 찍었습니다. 특히 특수학교가 완성되고 그 학교로 학생들이 등교하는 마지막 부분은 안도와 함께 큰 울림을 줍니다.
수상자들에게 깊은 축하를 드리며 아울러 본선에 오른 모든 작품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0 본선 장편경쟁 심사위원 일동
구교환(배우, 영화감독)
김희정(영화감독)
이진숙(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