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서울독립영화제2024 (제50회)
장편 쇼케이스
손구용 | 2024 | Documentary, Experimental | B/W | DCP | 86min (N)
TIME TABLE
11.29(금) | 14:30-15:55 | CGV압구정(신관) ART1관 | E, K, GV, G |
12.4(수) | 20:10-21:35 | CGV압구정(신관) ART1관 | E, K, GV, G |
SYNOPSIS
오후 2시경 공원에서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한편,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고, 구름은 해를 가리고, 고양이는 세수하고, 물레방아는 돌고, 비둘기들은 보도에 앉아 쉬고, 남자는 뜰의 구석에서 서성이고,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고, 분수는 솟구치고, 잉어 몇 마리 연못 속에서 헤엄치고, 개미들은 제 할 일에 바쁘다.
DIRECTING INTENTION
영화 작업에 있어 나는 지금껏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방법, 즉 일인칭 시점에서 벗어나 카메라의 앞과 뒤에 있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지점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갈망은 인간 중심의 관념에 의한 감각의 왜곡이 없는, 따라서 만물 사이에 위계가 사라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식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이 영역에서 현상은 인간이 명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모든 실체는 명사로 머물지 않고 동사화됨으로써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이로써 인위적 개입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미지로 재인식된 사물은 새로운 차원의 배경에 놓이게 되는데, 마치 무화된 듯한, 납작해진 시공간은 유한과 무한을 넘나들며 관념에 의해 협소해진 인간의 인지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 영화가 각색한 시의 저자 故 오규원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는 접근 방식을 자신의 시론에서 ‘투명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이 영화가 그의 비전과 같은 선상에 있기를 바란다.
FESTIVAL & AWARDS
2024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손구용
2020 오후 풍경
2023 밤 산책
STAFF
연출 손구용
제작 손구용
촬영 손구용, 김지환
편집 손구용
PROGRAM NOTE
여름과 밤, 계절과 시간, 나무와 바람과 달, 자연의 세부, 어쩌면 모두이자 무심히 흘려보내면 아무것도 아닐 풍경을 맑은 이미지로 길어 올리는 손구용 감독이 <오후 풍경>(2020), <밤 산책>(2023)에 이어 내어놓은 세 번째 장편이다. 그의 작품 제목이 오롯이 영화를 담고 있듯 <공원에서>는 한 공원을 비춘다. 공원의 풍경 안에는 저마다의 모양새로 뻗은 나무들, 그 사이를 낮게 날거나 높게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와 바닥을 거니는 비둘기, 잘 관리된 나무가 햇살에 드리우는 그림자, 시원하게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와 찰방찰방 소리 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과 세수하는 고양이, 하늘 위의 해와 구름이 있고, 그 풍경들 사이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도 무위하는 듯도 한 남자가 나무 아래 서성인다. 그리고 한 여자가 따로 떨어진 벤치에 앉아 시집을 읽는다. 오규원의 시 「뜰의 호흡」이 텍스트로 떠오른다. 이 모든 이미지가 반복 변주되는 동안 흘러가는 구름에 해가 가렸다 보인다. 이에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도 희미해졌다 선명해지며 빛이 변하는데, 순간 그 운동과 리듬감에 흠칫 놀란다. 그뿐인가. 물레방아 곁에서 일렁이는 물결에 햇살이 오묘한 빛깔로 반사되고, 청량한 물소리와 폭포수와 같은 분수 소리가 나지막이 울리면 공원은 어느새 작은 우주가 되고, 영화는 어떤 강박도 깃들지 않은 이미지가 운동하는 세계가 되어 간다. <공원에서>는 산책자의 발걸음과 사색가의 시선, 시인의 마음을 지닌 각별한 영화다.
홍은미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