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와 세기

서울독립영화제2007 (제33회)

해외초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 Thailand, Austria, France | 2006 | Fiction | 35mm | Color | 105min

SYNOPSIS

<징후와 세기>는 서로 공명하는 두 부분에 대한 영화이다. 두 명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연인사이였던 감독의 부모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영화의 전반부는 한 여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공간은 감독이 나고 자란 세계의 향기를 품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는 남자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이는 감독이 현재 살고 있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FESTIVAL & AWARDS

2007 Best Film Award, 9th Deauville Asian Film Festival
2007 Best Editor Award, Asian Film Award
2007 Special Mention, Fribour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07 Honourable Mention, Adelaide Film Festival

DIRECTOR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STAFF
PROGRAM NOTE

대화를 나누며 어디론가 향하는 세 사람. 이윽고 카메라는 그들을 스치듯 지나쳐 창문 밖 풀밭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 그렇게 멈춰 선 채 창문 밖 풍경화처럼 펼쳐진 푸른 풀밭을 하염없이 응시한다. 그 사이 화면 밖에서는 이미 사라진 사람들의 대화와 발자국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등장하는 이 인상적인 장면은 어쩐지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화면 밖에서 계속 같은 크기로 들려오는 사운드는 카메라가 그들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듯 느껴지지만 정작 시선은 창 밖 풀밭에 머물러 있다. 정면을 향해 멈춰 선 카메라와 화면 너머 지속되는 인물들의 움직임. 이 장면을 우리는 보는 것일까, 듣는 것일까. 영화 혹은 감각에 대한 관습적인 언어나 문법으로는 설명키 어려운 아핏차퐁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징후와 세기>는 보는 것과 듣는 것, 정지와 운동의 감각이 동시에 경험되고, 이야기와 인물은 중첩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린다. 전반부 시골 병원의 풍경과 후반부 도시 병원의 풍경, 마치 전통을 간직한 전 세기와 동시대 현대를 상징하듯 두 부분으로 나눠진 영화는 공간만 다를 뿐 얼핏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인물, 사건의 대조를 이루는 두 부분은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 이미지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두 부분 모두 병실에서 시작하지만 전반부는 실내에서 점점 푸른 하늘과 개기일식이 벌어지는 자연의 풍경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후반부가 향하는 곳은 무겁고 거대한 환풍기가 버티고 선 어두운 지하 공간이다.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듯 평화로운 자연의 풍광과 블랙홀처럼 현대 도시의 모든 음습함을 빨아들일 듯 서 있는 거대한 환풍기의 이미지. 무중력 상태와도 같은 그 낯설고 기이한 감각 앞에서 불현듯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은 사라지고 각각의 시대를 관통하는 기운만이 공기처럼 떠다닌다. 영화는 전 세기와 동시대, 그 서로 다른 공기와 이미지를 대구처럼 펼쳐 놓음으로써 변화하는 태국 사회의 징후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대개의 아핏차퐁 영화가 특정한 인물에서 시작해 불특정한 다수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끝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는 아닐까.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 좀처럼 공유키 어려운 영화, 아핏차퐁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며 새로운 영화의 징후를 발견하는 도전이다.

모은영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