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본선경쟁(장편)

조세영 | 2009|Documentary|Color|DV|72min

SYNOPSIS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이 '작은말하기'라는 모임에서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를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자신을 열어 사람을 발견하고 성장시킨다. 외부와 충돌을 겪으며 더 강해지는 그녀들. 피해자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용감한 그녀들의 '생존토크'는 위대하다.

DIRECTING INTENTION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잊고만 싶었던, 하지만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악몽으로,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태도로 되살아나던 그‘사건’을 소리 내어 말한다.

그 날을 떠올리면, 충격 그 자체였다.
참가한 대다수의 여성이 숨죽여 울고 있던 모습.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자신도 같은‘생존자’의 삶을 살아왔다고 무언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눈빛들.‘말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내 안에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여성이 40년간 숨겨온 자신의 경험을 터뜨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지지를 표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당황스럽게도 나도 저 피해를 말하는 여성과 비슷한 경험을 했었음을 기억한다. 그때부터‘성폭력’이란 단어는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말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사건’을 통해 삶의 방향, 사회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가는‘생존자’들의 뒷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키워낸 남성과 여성을 향한 성의 이중잣대의 충돌 지점인 성폭력이 드러날 것이다. 여성의 몸으로 늘 감추고 숨겨야만 했던 우리에게 학습되어진 것들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당신은 이제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를 통해 성폭력과 사랑에 빠진 그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여행의 동반자는 자신은 성폭력과 무관하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다.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모든 탑승자들, 벨트를 꽉 매고 있으시길.

FESTIVAL & AWARDS

2009 제13회 인권영화제
2009 제1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

DIRECTOR
조세영

조세영

2004 < 메이드 인 한국인 >

2007 < 빌리진과 효도르 >

STAFF

연출 조세영
제작 조세영
촬영 조세영, 아오리, 김자경, 나비
편집 조세영
CG 김형진
음악 이지은
출연 미경, 보짱, 한새, 자비, 강영
애니메이터 서진화, 김연지, 류제희, 조득수

PROGRAM NOTE

어쩌면 이것은 충격일 것이다.
언론에서 늘 그렇게 대하듯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변조된 목소리와 모자이크된 얼굴로 자신의 피해사례를 음울하게 이야기해야 마땅할 법한 이들이 당당한 쌩얼과 씩씩한 목소리로 시종일관 유쾌, 발랄하게 수다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말이다.
감독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모임인 ‘작은말하기’ 모임에서 성폭행을 당해 현재 재판중인 미경과 성폭력 예방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새, 과거 성폭력 피해자였지만, 현재는 여성학 연구자인 보짱과 처음 만난다.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는 피해 여성’을 상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간다.
성폭력 세계 2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그 통계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디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건만 여전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바로 그 성폭력의 문제를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서 치유의 목소리를 내는 그녀들과 행보를 같이하며 주눅들지 않고 명랑하게, 움츠려들지 않고 버라이어티하고 신나게 파고든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거 너무 밝은 거 아냐’라고 짐짓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길들여진 성폭력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술을 마셨다고 선처의 대상이 되고 ‘여자들의 노출이 문제’이고 ‘남성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밤길은 위험하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감독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생존자가 있을 뿐이고, 나 자신조차 생존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휴가 나온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미경의 재판을 위해 ‘작은말하기’ 모임의 여성들이 그녀의 머리매무새를 만져주고 썬글라스를 씌워주고 함께 어깨 걸고 군부대 안으로 들어갈 때는
그녀들의 걸음 걸음에 예쁜 꽃잎 한 아름 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인식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실체 없는 죄의식과 자존감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할 때 공개적인 수다에 참여한 그녀들과 그것에 백배의 지지와 공감으로 다가가는 이 영화는 성폭력을 어두운 밀실에서 햇볕 짱짱한 거리로 꺼내 놓는 새로운 시각과 성취를 보여준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가 사회의 고루한 편견에 날리는 맵싸한 강펀치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부지영/서울독립영화제2009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