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단편애니메이션초청

백현진 | 2009|Fiction|Color|HD|33min 6sec

SYNOPSIS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에피소드는 다른 에피소드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모든 에피소드의 마지막 컷은 클로즈업된 배우의 표정을 1분 이상 보여주다가 THE END란 자막이 뜨며 끝나는 동일한 형식을 취한다.

DIRECTING INTENTION

청명한 가을 하늘에 THE END란 자막이 오버랩 되는 헛장면을 일시적으로 반복 경험하면서 느꼈던 공포스럽고 평온하며 우울한 감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탐구하고 기록하길 원했다.

FESTIVAL & AWARDS

2009 제10회 대구단편영화제
2009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백현진

백현진

 

STAFF

연출 백현진
제작 채수진
각본 백현진
촬영 김우형
편집 성수아
조명 홍승철
미술 김준
작곡 장영규
믹싱 스튜디오 케이
녹음 이순성(스피드 사운드)
출연 박해일, 류승범, 문소리

PROGRAM NOTE

네 번의 “The End”가 등장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네 개의 문이 있고, 그 문을 들어서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배우들(박해일, 엄지원, 류승범, 문소리) 각각이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으며, 영화가 그 문을 빠져나올 때마다 화면 중앙에 “The End"라는 커다란 글자가 툭 떨어진다. 각 에피소드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그 속의 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네 개의 이야기는 제각기 흩어져 있고 인물들이 내뱉는 말은 그야말로 헛소리 같다. 그렇다고 그 언어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뭔가 지금, 여기의 물질성을 붙잡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영화는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할 생각이 없다. 다만 서로 다른 네 개의 이야기들과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어떤 공기에 일관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고, 그 흐름을 느낄 때 이 영화는 좀 무시무시해진다. 처음에 우리는 인물들의 요란한 화법과 그 언어에 담긴 요란한 심정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만, 어느 순간 그 수사들이 껍데기처럼 등장했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느닷없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나타난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호소하지만, 창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차단된 얼굴 같다. 눈물과 미소 사이에서 미묘하게 떨리던 얼굴 근육 위로 “The End”라는 단어가 겹쳐질 때,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이것은 끝까지 치달은 끝에 도달한, 꿈틀거리는 시작의 얼굴일까. 허울뿐인 언어가 사라지고 마침내 본질만이 남은 투명한 순간일까. 혹은 세계에 정초하지 못한 존재가 끝내 천천히 소멸해가는 소리인가. 얼마간 신경증자의 우울과 슬픔에 사로잡혔던 얼굴들이 갑자기 이 지점에서 정신병의 평온함으로 건너 뛴 것 같은 인상이 있다. 수신자가 없는 대화, 수신자가 없는 얼굴의 쏟아짐, 혹은 비워짐. 그 빈 자리에서 오직 카메라라는 기계-눈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남다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