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서울독립영화제2010 (제36회)
본선경쟁(장편)
이강현 | 2010|Documentary|Color|HD|139min
SYNOPSIS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관리 업무를 맡은 보건관리대행기관의 산업의학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번씩 보건관리(작업환경점검, 건강상담, 직업병 상담)를 현장에서 받도록되어있다. 이 영화는 위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1년 여간 촬영한 기록물에서 출발한다.
DIRECTING INTENTION
지하철2호선. 한손은 검은색 가죽가방의 벌어진 틈을 거머쥐고 나머지 손으론 핸드폰을 쥔 채 울먹이며 간증하는 그녀,
" 하지만 언니… 무엇인가가 우리를 사로잡아줘야만 해. "
DIRECTOR
이강현
2006 <파산의 기술>
STAFF
연출 이강현
촬영 이강현 박영준
편집 이강현
PROGRAM NOTE
카메라 앞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작업복을 입은 남자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지만 그는 자꾸만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이 잘못 알아듣는 남자에게반복해 질문을 하지만 남자는 잘 들리지 않는다며 계속해서 엉뚱한 대답을 한다. 이런 상황을 떠올린다면 혹자는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산업현장의 가공할 소음 속에 십 수 년을 일하는 과정에서 청력을 상실한 노동자의 이야기라면 사정을 달라진다.이강현 감독의 <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명기된 ‘현장보건관리’를 1년간 촬영한 영상 클립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장을 점검하거나 직업병과 건강 상담을 진행하는 전문의와 노동자들의 모습은연출한 장면이나 의도를 가지고 촬영된 화면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진 일상적인 ‘현장보건관리’의 장면들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장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화면안에 등장하는 사이 스크린 속 화면은 단순히 ‘현장보건관리‘를 담은 기록물이 아닌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게 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비슷한 현장의 모습과 비슷한 증상,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증상을 듣는 것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의사들. 작업의 종류, 노동 강도의 차이, 작업장의 차이에 상관없이 비슷한 대화내용은 ’현장보건관리‘, 그러니까 법상으로 명기된 어떤 조치들이 기실 노동자들의 고통과 병의 근원적인 해결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못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평생 밭일을 하며 관절염과 허리 통증 등 온갖 병에 시달리게 된 농촌의 노인들, 혼자 텅 빈 사무실에 나와 밤사이 컴퓨터 시스템을 점검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그 범위를 확대해감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이 단순히 한 작업장이나 한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것이며, 그것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보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과 관련된 것임을 밝혀낸다. 영제인 ’Color of Pains’가 의미하듯 ‘고통의 색깔’인 동시에 그것을 ‘보라’는 중의적인 제목 그대로, 영화는 전작인 <파산의 기술>에 비해 더욱 날카롭게 벼려낸 카메라로 개인에게고통을 야기하는 시스템의 모순과 그것을 ‘보는’ 눈인 카메라의 윤리성 혹은 역할에 대한 고민을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모은영 / 서울독립영화제201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