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들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37회)
본선경쟁(단편)
정윤석 | 2011|Experiment|Color|HD|11min40sec
DIRECTING INTENTION
자기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당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내 삶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용산’은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아파트 건설 현장, 척박한 흙더미를 거닐며 숨찼던 늦은 밤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쉽게 부정할 수 없었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버려진 돌, 꺽여진 나무. 흔들리는 바람 소리, 매일마다 마주쳐왔지만 스쳐 버려졌던 일상의 조각들을 나는 카메라로 담기 시작했다. 애도하고 싶었지만 무덤으로 함께 들어가고 싶진 않았던 나에게 먼지들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DIRECTOR

정윤석
2005 <박수>
2006 <우리나라에도 백악관>
2008 <‘그’를 찾아서>
2009 <불타는 신기루>
2010 <별들의 고향>
STAFF
연출 정윤석
촬영 정윤석
편집 정윤석
PROGRAM NOTE
불과 11분 30초일뿐이다. 그 밤이 남긴 잔해의 기억은 짧다. 먼지들이 남긴 짧은 기억은 일종의 복합골절이 다. 부러진 곳이 한 곳이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자꾸만 밤을 떠다니며 부러져버린 뼈 조각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부상의 부위조차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하여 고단하다 말도 한마디 못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염두(念頭)를 다친 거라고, 시력을 잃어가는 거라고, 자꾸 보았던 그것이 악몽으로 반복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잔해들 사이에서 한 마디의 울리지 못하는 소리는 ‘우리는 너를 빼앗길수 없다’로 읽힌다. 마침표는 보이지 않고 ‘위험’은 잘 읽힌다. 잔해들 사이에 서 있는 위험. 쓰레기 더미 사이에는 불안해하는 어린 동물이 하나 있다. 냉장고도 등을 돌린 밤. 얼려둔 기억 하나라도 꺼낼 수가 없다.
세로로 반짝이는 빛들. 물빛일까 먼지들인 건가. 밤이 열어둔 염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라는 일련의 통로를 지나 낯 설은 경고음 곁에서 밤의 생존자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공사 중이다. 아니다 이 곳은 철거 중이다. 아니다 이 곳은 더 이상 이 곳이 아니라 그 어떤 곳이다. 아니다 이 곳은 여전히 그때 그 곳이다. 유일하게 개입된 낮의 기억은 밤에 쉬는 굴삭기의 활동이다. 부서지는 것들 사이로 무한한 잔해-먼지들이 날아간다. 회색의 표면 위에 그어진 검은 사각형은 멈춰 사유한다. 붉은 풀과 흰 물빛이 다시 달에게로 흡수 된다. 물소리와 흰 덩어리. 검은 바탕 위에 불과 물이 싸운다. 물 위로 불이 떠다닌다. 파수꾼을 위한 작은 문이 연실 뭔가를 토해낸다. 물이 불과 싸운다. 거대한 싸움에 남은 것은 오직 물소리뿐이다. 부상당한 부위는 이 곳이다. 도깨비불이 떠다니는 밤. 사각의 틈이 만들었던 문을 닫고 다시 나무라는 통로를 지나 서둘러 나간다. 혹 나가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을 뿐일 지도 모르는 거라면 출구를 찾지 못한 게다. 잔해에서 ‘ 빼앗긴 너’를 찾아내야 한다는 고단한 숙제. 숙제를 끝내기는 했지만 처방전도 치료제도 없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가 빼앗길 수 없는 너’를 염두 속에서 찾아내기는 했다고 해도 ‘너’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할 수 없는 것인지,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열려있다는 문은 열려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거기에 맴돌고 있고 그 떠다니는 밤이 짧으며 소화되지 못한 음식이고 작게 부서진 이야기로 남이 버렸기 때문일 거다. 더한 이유가 있을 거다. 거리감을 상실한 낱말 들로 밤을 유랑하는 모험은 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말도 분명히 있지만 그 말을 믿기에는 여기-그 곳은 아직 충분히 여전히 어둡다.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짧은 기억에서 빠져 나와 강으로 흘러갈 먼지들을 기다리는 일은 부조리가 아닐 것이라고 ‘그 곳’을 지나며 혼자 말해본다.
이난/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