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본선경쟁(단편)

최승철 | 2012 | Experimental | Color | HD | 8min 46sec | 특별언급

SYNOPSIS

첫 번째 이야기는 사전적 의미의 명사로 ‘겉에서 속으로 멀게’라는 뜻의 깊이를 말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욕망과 욕구 즉 감정의 깊이를 말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양쪽의 거울 속을 보는 것과 같이 반복되는 말들 속에서 알 수 없는 그림자의 끝자락과 햇볕으로 물음을 던지는 장면이다.

DIRECTING INTENTION

어떻게 하면 깊이 있는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깊이에의 강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훌륭함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예술 작품을 보면 깊이가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 깊이가 있는 작품에 처음 깊이를 말한 사람이 누구이며 그 말에 나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깊이에의 강요>는 깊이에 대한 나의 짧은 세 가지 생각들이다.

FESTIVAL & AWARDS

Premiere

DIRECTOR
최승철

최승철

STAFF

연출 최승철
제작 한재현
각본 최승철
촬영 고은해
편집 최승철
조명 고은해
출연 김희정, 이연, 윤상범, 윤희수, 한재현

PROGRAM NOTE

이 영화는 세 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세 숏은 내용적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립적인 단상들로, 모두가 제목에 충실하게 ‘강요되는 깊이’에 대한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옮겨 놓은 것이다. 영화가 선택한 첫 번째 단상과 세 번째 단상은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 단상은 한 인물이 화면의 전경에서 출발해서 후경으로 달려가 기어이 풍경의 너머로 사라지기까지를 촬영한 고정 앵글의 롱테이크 숏이다. 영화/카메라의 기계적 속성에서 유발되는 시각적 깊이, 즉 심도를 보여 주려는 의도다. 그런데 이 숏은 피사체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일정 시간 지속된다. 우리는 피사체의 운동이미지가 만들어 낸 그 소실점의 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지켜보도록 그 시간의 지속 속에서 강요받는다. 세 번째 단상은 두 명의 인물이 마주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 같은 소리를 서로 논쟁적으로 발성하는 모습을 잡은 이인 숏이다. 이번에 카메라는 고정이 아니라 서서히 줌-인하여 마주 앉은 두 사람 너머 풍경 안으로 화각을 좁혀 간다. 입장, 관점, 관념으로서의 깊이와 일방적 주장으로서의 강요. 그것의 부조리적인 강조가 이 숏의 콘셉트다. 사실 이 두 가지 단상만을 놓고 본다면, 영화는 다분히 교과서적이고 일차원적이어서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포인트는 두 번째 단상이 보여 주는 외설적인 상상이다. 오럴 섹스를 하는 여자의 모습을 남성의 시점 숏처럼 직부감으로 찍은 두 번째 단상은 그 자체로 당혹스러운데, 어떤 점에서는 앞뒤 단상이 갖는 상식적이고 고지식한 방식과 대조되는 발상 때문에 유머러스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첫 번째 단상과 세 번째 단상은 이 두 번째 단상이 갖는 센세이셔널한 느낌을 상쇄시키고 다른 측면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이자 배치인 셈이다. 이 영화의 콘셉트에 대해 깊이 있게, 혹은 그 의도나 방식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바라본다면 다분히 논쟁적이 되거나 불쾌해질 수 있겠지만, 작가는 ‘깊이에의 강요’라는 무겁고 엄숙한 테마에 대한 외설적인 농담 혹은 장난기 가득한 항변 정도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장훈/서울독립영화제2012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