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희는 오늘 하루가 유난히 낯설다. 이게 다 그 망할 쪽지 시험 때문인 거 같다.

푹 파인 도랑을 따라서만 흐르는 의식들.

Premiere

고달픈 청춘의 자화상이자 서로에게 건네는 하나의 위로 같은 영화. ‘Stand’라는 단어가 가진 이중의 의미를 차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와 배우들의 자연스런 대사와 연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랑스럽고 따뜻한 영화이기도 하다. 취업 준비로 바쁜 주인공 가희는 영어학원에서 쪽지 시험지를 받아 들고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I can’t stand it.” 모두 다 아는 이 문장의 뜻을 왜 나만 몰랐던 걸까? 세상엔 견딜 수 없는 것들투성이지만 청춘들은 그저 흘러가듯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흐름에 무기력하게 몸을 싣는다.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면 5/4 또는 잉여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지만 주인공은 먼저 인생을 살아 낸 아버지의 50년이 궁금하기도 하고 경찰공무원이 된 연약한 친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견딜 수 없고 서 있기도 힘든 현실에 맞서는 방법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 보기.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stand’를 이해하는 순간, 현실에서 지친 서로의 아픈 다리를 기대며 위로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김영우/서울독립영화제2013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