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단편 쇼케이스

무진형제 | 2021 | Experimental | Color | DCP | 10min (K) World Premiere

SYNOPSIS

<그라운드 제로>는 동시대 인간의 불능에 대해 얘기한다. 코로나19 이후 인간은 탐험과 발견으로 점철된 연대기를 지나 스스로의 멸종과 종말의 신화를 쓰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는 만들어진 지형과 모형의 인간으로 오늘날 인류가 처해 있는 자연과 삶의 시스템을 신화 속 이야기를 듣듯 새롭게 재구성한다.

DIRECTING INTENTION

<그라운드 제로>에는 무너지고 있는 지형과 온갖 재난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는 인간 모형, 그리고 시적으로 써 내려간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이는 합리적 이성과 진보가 초래한 재난, 난세 속 불능의 인간,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 시스템과 지형의 변화 등을 담고 있다. 오늘날 개인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 방식과 재난으로 인해 커져 가는 결핍된 세계상을 어떻게 각자의 삶 속에서 진중하게 고찰해 볼 수 있을지 관객들과 함께 되짚어 볼 수 있길 바란다.

DIRECTOR
무진형제

무진형제

2019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1,2
2020 오비탈 스퀘어즈
2022 궤적(櫃迹) – 기술된 선인(善⼈)들

STAFF

연출 무진형제
제작 무진형제
각본 무진형제
촬영 무진형제
조명 무진형제
편집 무진형제
미술 무진형제
사운드 무진형제

PROGRAM NOTE

‘그라운드 제로’는 시작 지점을 뜻하는 말로, 재난이나 테러가 벌어진 현장을 가리키기도 한다. 검은 암석과 그를 뒤덮은 정체 모를 흰 액체를 관찰하다 보면 적어도 지구의 규모를 벗어난 우주적 규모의 재앙을 상상하게 된다. 어느 순간 영화는 클로즈업에서 벗어나 까마득한 깊이를 만들어 낸다. 여러 개의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가는 것일까.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이 필름 형태로 담길 수 있을까. 어쩌면 미래에서 기록한 지구 멸망의 필름인지도 모른다. 인류 멸종 이후, 외계인이 까맣게 타 버린 물체를 두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려고 특별한 시약을 시험하는 것인지 모른다. 또는 검은 암석을 타고 흐르는 액체는 모든 빙하가 녹아 버린 것을 의미하고 인류는 물속에 가라앉거나 용암 속에 타 죽고 지구의 수명이 끝났는지도. 줌아웃이 계속되자 재난을 담은 필름은 끝도 없이 길어져 섬광처럼 사라진다. 모두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시간의 속도를 예고 없이 조절하고 풍경과의 거리를 무한정 늘리기도 한다. 인류를 관찰하는 이 눈은 인류의 관심사에서 최대한 멀어지거나 인류의 이득에 최대한 무심할 수 있는 거리를 탐색하는 카메라의 노력 같다. 이런 비-인간적인 노력이야말로 인간을 위한 가장 이로운 노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시가 말하듯, “우리 각자의 걸음으로 그 길의 지속과 소멸을 가늠할 수 없”기에.

김주은 / 서울독립영화제2022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