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
서울독립영화제2011 (제37회)
본선경쟁(장편)
선호빈 | 2011|Documentary|Color|Beta|76min37sec | 특별언급
SYNOPSIS
2006년 4월, 고려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를 감금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2006년부터 고려대로 통합되는 고려대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일어난 일이었다. 학교는 시위에 참가한 학생 중 일부에게 출교라는 강경한 징계를 내린다. 출교된 학생들은 징계의 과정과 결과가 비민주적이고 부당하다고 여겨 고려대 본관 앞에 천막을 세운다. 이 천막은 2008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고려대와 출교생들의 법적, 정치적, 물리적 싸움을 카메라에 담았다.
DIRECTING INTENTION
2005년, 고려대학교는 백주년을 맞았다. 어윤대 총장은 민족의 대학을 벗어나 세계고대로 나아갈 글로벌 비전을 선포했다. 기부금 유치 신기록을 세웠고 캠퍼스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갔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졌다. 학교에는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고려대의 인지도와 취업률이 높아졌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올라가는 대리석 건물 뒤에는 지저분한 자치공간이 있었다. 등록금은 매년 인상되었다. 국문학과 교수는 영어로 한국의 시와 소설을 가르쳐야 했다. 졸업을 위해서는 토익과 한자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학교 내의 갈등이 심해졌다. 출교된 학생들은 이런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최고사학을, 글로벌 리더를 자처하는 고려대가 ‘개혁’과 ‘발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 수 있다.
FESTIVAL & AWARDS
2011 제11회 인디다큐페스티발
DIRECTOR
선호빈
STAFF
연출 선호빈
제작 쿠벨바그
각본 김상훈, 김민수, 선호빈
촬영 김민수, 김상훈, 선호빈, 김태완, 최준우, 박동일, 권재황, 김소진
편집 선호빈
출연 강영만, 김지윤, 서범진, 조정식, 주병준, 안형우, 성영신, 어윤대
PROGRAM NOTE
'레드’,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적인 젊음의 표상이자 그로 인해 한국사회 가장 오래된 사학 중 한 곳인 고려대 스스로 오랫동안 자신들의 상징처럼 지녀왔던 색. 하지만 만약 그것이 정치나 이념적 함의가 담긴 ‘레드’라면 이 땅에서 그것은 더없이 불길하고 불경스러운 단어가 될 것이다. 2006년, 고려대로 통합된 병설 보건대학 학생들의 총학생회 투표권 요구 시위 도중 일어난 고려대 학생들의 ‘교수감금 사건’과 가담 학생들에 대한 사상 초유의 ‘출교조치’ 그리고 그 절차와 방법의 부당함에 항의한 학생들의 학교 내 ‘천막 농성’. 선호빈 감독의 <레즈>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에 걸쳐 학교에 의해 불경스러운 ‘레드’로 낙인찍힌 학생들의 외롭고 지루한 싸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출교학생들의 인터뷰, 천막 안에서의 일상과 천막 안팎에서의 투쟁의 모습, 학교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반응, 그리고 이른바 ‘고려대’를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영화는 2년여의 시간을 담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출교가 단순히 ‘교수감금’에 대한 징계의 차원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재벌 총수에게 명예박사학위를 남발하며 환심을 사기 바쁜 대학,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과 ‘좋은 대학, 아닌 대학’ 운운하며 뒤틀린 교육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교수, 글로벌 시대 무한경쟁을 부르짖는 총장과 학교의 모습은 학문의 터전이기 보다는 ‘교육사업’을 내용으로 하는 또 다른 재벌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무한경쟁을 향해 치닫는 대학의 모습, 문제는 이것이 비단 고려대라는 한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와 교수는 물론, 같은 대학 학생들로부터의 어떤 호응이나 연대 없이 지속했던 2년간의 외롭고 힘들었던 투쟁. 영화는 외로웠던 지난 싸움만큼이나 앞으로의 싸움 역시 외롭고 힘들 것임을 암시하듯 속 시원한 승리의 외침도, 또 다른 투쟁에의 뜨거운 다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끝나고 만다. 그 고요함은 곧 견고한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다가오지만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갈 이들이 있음을 믿기에, ‘학생운동이 죽으면 대학의 자유도 죽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기에 영화는 그래도 희망을 품게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레드’가 아닌 ‘레즈’로 연대하는 그 날을 떠올리며 말이다.
모은영/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