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장편 쇼케이스

이마리오 | 2022 | Documentary | Color | DCP | 86min 13sec (E) World Premiere | 집행위원회 특별상

SYNOPSIS

써먹기 위한 것이 아닌, 온전한 재미로 무언가를 배워 본 적이 있나요? 강릉의 대표적인 구도심 명주동의 작은정원 언니들은 3년간 배워 오던 스마트폰 사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평균연령 75세,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 극영화 <우리동네 우체부>는 영화제에 초청이 되고 수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다. 하지만 영상에 찍힌 주름이 많고 구부정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움직이기 힘들어 더 이상 함께할 수가 없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모이기조차 어렵다. 그녀들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DIRECTING INTENTION

100세 시대, 회색 쇼크, 인생 2막. 노인이 인구의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 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년이 두렵기만 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병든 몸을 이끌고 어떻게 몇십 년을 더 살까? 세상은 노후를 위해 보험을 들고 창업을 하라고만 한다. 조언이라기보다 협박에 가깝다. 노인은 ‘문제’가 되었고,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늙음을 낡음과 동일시하며 나이 든 사람을 점점 더 비가시적으로 만들고 있다.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은 듯 사람들이 시선을 주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노년 세대들은 생물학적 죽음을 맞기 이전에 이미 기술에 의한 사회 시스템이 지닌 속도 때문에 소멸을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도시는 가공된 이미지의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거기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노년 세대들을 그 공간의 외곽으로 밀어내고 있다. 노인은 이러한 세계를 원한 바 없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물질문명은 노인들의 감각을 배반하고 그들의 곁을 스쳐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
실제로 노년 세대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노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은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합당한 ‘존엄’이다. 노년이 아닌 사람이 노년에게서 발견해 감탄할 것은 젊음의 유지가 아니라, 존재감과 품위이다. ‘끝까지 자기답게’ 사는 노년의 아름다움, 즉 시선을 끌어당기는 연륜의 빛을 아름다움으로 제대로 지각하는 것, 더 나아가 지각하게 만드는 것은 태어난 이래 계속해서 나이 들고 있으며, 언젠가는 폭삭 늙은이가 될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노년기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 순간 여기’의 삶에는 노년기의 삶도 함께 깃들어 있다. 사실은 이미 와 있는 미래다. 아직 오지 않은 동시에 이미 와 있는 미래인 노년기와 어떻게 사귈 것인지를 상상하고 또 구현하는 것은 고령화가 계속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현재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DIRECTOR
이마리오

이마리오

2001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2018 더블랙
2021 컬러 오브 브라스

STAFF

연출 이마리오
촬영 조찬휘
편집 김형남
사운드디자인 표용수

PROGRAM NOTE

강릉시 원도심 명주동에서 ‘작은정원’이라는 자치 모임을 만들어 동네 이곳저곳도 꾸미고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이 마련한 극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은 <우리동네 우체부>라는 단편을 공동으로 제작하여 2020년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한 어엿한 영화인들이기도 하다. 그런 어르신들이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도전한다. 휴대폰을 활용한 동영상 촬영법부터 배우면서 자신이나 동료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 어르신들이 포착한 일상의 순간과 풍경들이 공유되고, 카메라 앞에서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의 고비와 선택들을 회고하는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들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시대극이나 역사물보다 장엄하고 거대한 시간과 기억과 추억들의 저장고가 된다. 주목할 점은, 작은정원의 어르신들과 연계하여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영상 제작까지 도전하는 강릉 지역 영화인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아름다운 헌신과 노력이다. 로컬시네마의 좋은 사례로 남을만한 <작은 정원>은 카메라에 담긴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이 선사하는 정서적 울림과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영우 / 서울독립영화제2022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