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의 취업시대
서울독립영화제2024 (제50회)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김의석 | 1984 | Fiction | Color | 16mm-DCP | 14min
TIME TABLE
11.30(토) | 16:00-16:44 | CGV압구정(신관) ART1관 | CT, 12 |
12.6(금) | 12:30-13:14 | CGV압구정(신관) ART2관 | 12 |
SYNOPSIS
소매치기인 창수, 병기, 영배는 한 팀으로 일한다. 이들 중 창수의 역할은 자신들을 추적하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따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창수는 자신이 가장 힘들고 이익배당금은 가장 적다는 것이 불만스럽다.
DIRECTOR
김의석
1981 뫼비우스의 딸
1984 천막도시
1992 결혼 이야기
1995 총잡이
STAFF
연출 김의석
촬영 오병철
스틸 최영모
사진 최영모
PROGRAM NOTE
<결혼 이야기>(1992)와 <그 여자 그 남자>(1993)의 성공으로 9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유행을 일으킨 주역이었던 김의석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으로 <창수의 취업시대>(1984)는 그의 아카데미 졸업작이다. 한국 독립 단편영화 초기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단편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가 출현했음을 먼저 알린 신호탄인 동시에 7~80년대 한국영화 작가주의의 연장선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현대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면들, 자본주의 발전과 성장의 이면에 버려지고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이 놓이는 주변부의 세계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꼬방동네 사람들>(1982), 창수, 병기, 영배의 세 청년 주인공 구성은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소매치기를 위해서라지만 정처 없이 방황하는 청춘의 우울한 모습은 <바보들의 행진>(1975)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도시 소시민의 상실감과 소외의 현실, 그 안을 살아가는 남성들의 패배주의를 그린 이 단편의 시선은 감독의 이후 작품인 <총잡이>(1995)와 <홀리데이 인 서울>(1997)를 예고한다.
기동성을 십분 활용해 서울역과 종로, 대학로 인근을 종횡무진하는 16mm 카메라의 전격적인 핸드헬드 촬영과 필름 포맷 특유의 거친 그레인은 쫓고 쫓기며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청년의 활기를 그들이 처한 현실의 초라함과 한데 담아내는 동시에 대비시킨다. 힘껏 뛰어 추격을 뿌리친 뒤 손에 남는 건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이니, 타깃이 된 소매치기의 피해자 역시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입부의 흑백 스틸 컷과 클로즈업으로 포착되는 인물의 얼굴들은 잘 살아 보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품고, 사회의 정상성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곁눈질로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안에 들지 못한 채 주변부를 배회하는 청춘 군상의 우울한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가 1980년대 영화운동의 산물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권력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검열의 칼질은 아직 살아 있었고, 그래서 국가의 이미지를 해칠 우려가 있는 소재와 장면들은 도저히 상업영화에서 살아남을 수 없던 시절,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시스템 바깥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립영화였기에 가능하고, 또 가질 수 있는 비전을 성취했던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후대의 관점에서 <창수의 취업시대>는 시대의 풍경, 그 안에 흐르는 공기의 서늘함을 정직하게 담아낸 기록으로서의 가치 또한 갖는다.
유실된 사운드를 재작업해 다시 만나게 된 <창수의 취업시대>는 연식에 따른 필름 열화와 손상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현재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어느덧 기성세대, 부모세대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도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그때에도 청춘의 현실은 가난하고 열악하고 가망 없어 보였다. 헬조선을 이야기하는 것도 식상해져 버린 지금의 풍경을 데자뷰처럼 필름에 새겨진 과거의 이미지에 겹쳐 보게 되면서 시대를 넘어서는 작품의 생명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조재휘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