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연대기

서울독립영화제2017 (제43회)

선택장편

김보람 | 2017 | Documentary | Color | DCP | 73min (K, E) | 새로운시선상

SYNOPSIS

여성의 몸은 먹고 자고 노동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 흘린다.’ 오랜 세월 이 피 흘림은 비밀과 신비, 열성과 부정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러나 무엇이든 흡수력이 있는 물질로 피를 처리해 오던 피 흘림의 과정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새롭게 변화했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2015년을 ‘생리의 해’로 규정했고, 전 세계의 여성들은 더 자유롭게 피 흘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롭게 피 흘리기’의 바람은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생리용품을 리뷰하는 유튜브 스타의 방문자가 100만을 넘어서고, 정치인들이 피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으로 정보의 벽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어떻게 피 흘릴지’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한다.

DIRECTING INTENTION

2015년 가을, 우연히 만난 네덜란드 여성과 이야기를 하던 중 탐폰이 좋냐 생리대가 좋냐는 논쟁이 붙었다. 평생 일회용 생리대만 쓴 나는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다는 샬롯의 말에 충격을 받고 처음으로 내가 18년 이상 흘린 피를 생각하게 됐다. 구글에 생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nstruation’을 치자 예상치 못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유롭게 피 흘리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었고, 평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생리용품이 그곳에 존재했다. 나는 기사들을 수집하며, 생리컵, 해면 탐폰, 울 탐폰, 일회용 생리컵, 생리 팬티 등을 주문했다. 매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다른 생리용품을 써보며 내 몸을 관찰했다.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했고, 인류의 피 흘림의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나는 오랜 시간 미워했던 나의 몸과 마침내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FESTIVAL & AWARDS

2017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7 제08회 광주여성영화제

DIRECTOR
김보람

김보람

2016 <혜화동 풍경>

2016 <녹성에서-씨네21까지, 잡지로 보는 한국 영화사>

2016 <장욱진의 삶과 죽음>

 

STAFF

연출 김보람
제작 오희정
각본 김보람
촬영 김민주
편집 김보람
음악 김해원
애니메이션 김승희

PROGRAM NOTE

올 한해 유해 생리대 문제가 주요 뉴스를 차지했다. 유해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생리대의 위험성을 시민단체가 고발하였고, 정작 안전성을 책임져야 하는 식약처는 대기업 생리대의 안전성을 주장하며, 시민단체의 주장에 반박하고 법적 고발까지 자행하였다. 어이없는 일들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생리는 대중적 미디어나 이슈 외부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생리는 여성성을 구성하는 많은 여타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사적이거나 불온한 어떤 것으로만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생리대 논란 역시 유해성이라는 공포감만을 남긴 채 그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대중적 이슈에서 사라져 버렸다.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는 바로 이 시기, 시의적인 적확성을 가지고 매우 흥미로운 이슈를 제기한다. 여성 생리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편견들을 고증하고, 동서양의 무수했던 생리용품들의 역사를 추적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중인 다양한 생리용품들의 체험기와 전문가적 소견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면으로 만들어지는 대안 생리대에서부터 탐폰과 생리컵에 대한 사용기들은 평생 중 35년 이상 생리를 해야만 하는 많은 여성들에게도 생소한 사실들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에 편견과 금기의 영역으로만 작동되고 있는 여성의 생리와 신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과 정책까지 모색하는 이 작품은 몹시 솔직하고 구체적이며 대안적인 방식으로 여성적 이슈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정지연 / 서울독립영화제2017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