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소설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특별초청2
신연식 | 2012 | Fiction | Color | DCP | 140min
SYNOPSIS
소설가 지망생인 신효는 당대 최고의 작가 김기진의 추천으로 등단을 하고 싶다. 김기진에게 자신의 원고를 꾸준히 보내던 신효는 김기진 작가의 아들 성환과 어울리게 되고 그를 통해서 김기진의 작업실 우연제로 가게 된다. 우연제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만나게 된 신효는 자신의 소설을 유일하게 인정해 주는 재혜와 마지막 작품을 쓰고 동반 자살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효는 죽지 않고 27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다시 깨어나게 된다. 27년 후의 신효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자신의 작품은 제 평가를 받아서 거장이 되어 있다. 27년 전에 철없던 행동을 똑같이 하는데도 자신을 철없고 모자란 놈으로 보던 시선들이 이제는 존경어린 눈빛들로 변해 있다. 신효는 이 상황들이 낯설지만 즐기기로 한다. 여기저기 초청받고 강의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신효는 어느 날 자신의 작품을 다시 읽고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다시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창작의 대상과 실제 삶의 구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각각의 시선에 따라 다른 소재로 쓰일 수 있는 각자의 삶은 <러시안 소설>의 가장 큰 구조적 모티브이다.
FESTIVAL & AWARDS
2012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감독조합감독상
DIRECTOR

신연식
2005 <좋은 배우>
STAFF
연출신연식
제작 신연식
각본 신연식
촬영 최용진
편집 김정훈
조명 이정민
음악 김신일
미술 최용진
출연 강신효, 경성환
PROGRAM NOTE
문학을 사랑하는 영화들이 있다. 문학에 대한 모방이나 문학의 영화화와는 다른 의미에서, 말하자면, 유독 이야기의 겹을 쌓아 가는 과정에 매혹되어, 그 겹을 영화의 구조로 숨 쉬게 한다는 의미에서 문학과 적극적으로 한 몸이 되기를 희망하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주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끝도 없이 들어가거나,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데 주저함이 없고,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비교적 공평한 시선을 부여하고, 그 시선들의 엮임으로 영화의 시간을 진행시키며 그 중심에는 대개 아버지의 텅 빈 자리가 있거나, 아버지라는 유령이 맴돈다. 이들은 문학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하지만, 그 열망이 실은 가장 영화적인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깨달음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요컨대, 내밀한 차이들은 있으나,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가 그러했고, 이광국의 <로맨스 조>가 그러했다면, 신연식의 <러시안 소설>도 이 계보에 속할 것이다. 특이한 것은 <러시안 소설>이 이야기의 겹을 파고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반과 후반이 마치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캐릭터, 톤, 구조 등의 측면에서 명징한 단절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영화의 중반부터, 이야기가 전반부와 툭 떨어져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 단절은 어찌 되었든 이 영화의 야심인 것 같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 같다. 죽도록 작가를 꿈꾸나 입버릇처럼 “배우지를 못해서”라고 중얼거리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작가 지망생 신효와 저명한 소설가 아버지를 두었고 본인 역시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의 전반부는 다중 화자의 소설처럼, 문자와 내레이션을 적극 끌어들이고, 현실과 판타지를 적극 넘나들며 진행된다. 치기 어린 문학적 열망, 미성숙한 사랑, 어쩌지 못하는 젊음의 혈기, 냉소, 좌절, 자유가 여기 있으며,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치열하고 충만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런데 신효의 죽음을 암시하며 전반부가 끝나고 영화는 27년 후로 갑작스럽게 도약하고, 우리는 전반부와는 확연히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27년 만에 깨어난 신효는 과거의 그와는 그 어떤 공유점을 찾을 수 없는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고, 문학의 꿈을 함께 꾸던 이들은 모두 어딘가로 흩어진 뒤다. 과거에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수많은 소설을 썼지만 정작 소설가가 되지 못한 청년이었으나, 지금은 자신이 쓰지 않은 소설의 작가로 알려진, 소설을 쓰지 않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영화가 문학을 둘러싼 이 단절, 이 세월을 통해, 혹은 문학이라는 껍데기를 끝내 놓지 못하는 이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밝히기는 무리인 것 같지만, 하나의 인상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안 소설>은 ‘문학’이라는 거대한 아버지, 혹은 초자아를 끝내 이기지 못한 고독한 작가 지망생들의 실패한 기록인데, 그 실패의 기록이 이상하게도 괴이한 문학이 되어 버린 역설, 나아가 그것이 새로운 방식의 영화 언어로 전환된 예로 기억될 것이다.
남다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