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로
서울독립영화제2006 (제32회)
에릭 쿠 특별전
에릭 쿠 | 1995 | 싱가포르 | 105min | 35mm | Color
SYNOPSIS
몹시 소심한 면로는 매춘부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국수가게를 하고 있다. 그는 버니라는 한 매춘부를 짝사랑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교통사고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다친 버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버니는 섹스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정성스럽게 자신을 간호하는 면로에게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에게 불행이 닥치게 되고 그들의 행복은 이어지지 못한다.
FESTIVAL & AWARDS
제8회 싱가폴 국제영화제 국제평론가연맹 특별언급상
제9회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최우수 아시아 감독상
DIRECTOR

에릭 쿠
STAFF
PROGRAM NOTE
17일간의 짧은 촬영기간에 완성한 <면로>는 에릭 쿠의 장편 데뷔작으로 비정한 도시환경에서 인물들이 겪는 소외와 고독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수를 만드는 미폭 사내는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는 고독한 인물이다. 그는 HDB공공주택에 거주하면서 단지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 우연히 그는 창녀인 버니에게 마음이 끌리는데 말을 심하게 더듬는 탓에 말 한번 건네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버니 또한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HDB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버니는 가족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내비칠 수 없는 속내를 비밀스런 일기에 적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버니의 비밀스런 내력은 몰래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는 남동생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버니는 영국인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데 그가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지만 사실 남자친구는 아시아 여인들의 누드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버니의 기대를 저버린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미폭 사내는 그런 버니를 천사라 여기며 불결한 삶에서 구하려 한다. 우연히 발생한 사고 때문에 버니는 그의 집에 머물게 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끌리면서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버니가 갑자기 죽어버리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에릭 쿠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시공간의 불연속적인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 때문에 <면로>는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의 영화가 되었다. 게다가 미폭 사내가 죽은 버니를 침대에 뉘어놓고 마치 그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함께 대화를 하고 잠에 들거나, 죽은 아버지가 갑자기 방에 출몰하는 등의 장면에서는 시체애호증적인 면모 또한 엿보인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패턴을 통해 에릭 쿠는 현대 싱가포르인들의 인간관계의 피상성과 불건강성, 소외를 표현한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에릭 쿠는 90년대 싱가포르 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