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서울독립영화제2010 (제36회)

국내초청(장편)

박정범 | 2010|Fiction|Color|HD|127min

SYNOPSIS

탈북자 전승철은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숙영을 좋아하지만,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승철과 같이 사는 탈북자인 경철은 탈북자들의 돈을 모아 몰래 북한 가족에게 보내주는 브로커 일을 하다가 삼촌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승철에게 자신이 숨겨놓은 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DIRECTING INTENTION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 번호. 당연하게 입으로 뇌까릴 수 있는 이 번호에서부터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족이지만 외국인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 탈북자. 이데올로기나 체제에 대한 고민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 의지만으로 국경을 넘어 바다를 건너 먼 길을 돌아온 그들이 남한 땅을 밟고 나서 보게 되는 현실은 무엇일까. 또 다른 생존 경쟁의 한 가운데 던져져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그들의 삶은 남한의 겨울을 지극히 차갑고 무채색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그들에겐 이곳의 현실도 여전히 힘들도 버텨내야 할 것들 천지인 곳이다.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서울 한 복판, 화려한 포스터를 붙이고 노랫가락이 울리는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탈북자 전승철. 지독하게 외롭고 답답할 때도 구원을 바라던 그의 꿈이 너무도 간단히 어그러지고, 다시 바로 잡기 위해 친구의 위기를 이용해야 하는 승철의 모습을 통해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탈북자란 집요한 꼬리표를 떼어버리기 위해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하는 고독한 인간이 다만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초고층 건물이 올라갈수록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또한 투영될 수 있기를 바랐다.

FESTIVAL & AWARDS

2010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DIRECTOR
박정범

박정범

2001 <사경을 헤매다>

2008 <125 전승철>

STAFF

연출 박정범
제작 박정범
각본 박정범
촬영 김종선
편집 조현주
조명 이종석
미술 은희상
음향 문준영
출연 박정범, 진용욱, 강은진

PROGRAM NOTE

<무산일기>는 함경도 무산 출신의 전승철이 남한으로 넘어와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그려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기를 거부당했던 탈북자의 삶을 비장하게 묘사했던 단편 <125 전승철>에 이어 좀더 세밀하게 전승철의 삶을 보여준다. 살기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승철은 그러나 탈북자라는 이유로 취업이거절되고, 돈을 떼이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추운 겨울 거리에서 전단을 붙이거나, 노래방에서 서빙을 하는 일 정도이다. 그 일조차도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전전긍긍하며, 때론가혹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남한까지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다른 탈북자들은 자신보다 수월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승철보다 좀더 빨리 자본주의의 법칙에 적응했을 뿐. 온전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회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것일까? 영화는 승철이 살아남기 위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보여준다. 그나마 마음 속으로 의지했던 숙영과 사이가 좋아지고 적응해갈 즈음. 동생처럼 아꼈던 강아지 백구가 길에 쓰려져 있는 것을 보고,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뒷모습은 ‘무산자’ 승철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정범 감독은 불행한 승철의 행복을 영화를 통해 진심으로 빌고 있는 것이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2010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