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기원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국내초청(장편)

김응수 | 2009|Fiction|Color, B&W|HD|72min

SYNOPSIS

2009년 한 청년은 엄마가 남긴 그림 속의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나다. 엄마는 30년 전 그 곳을 떠났다. 그 곳에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송의 이여송은 충주를 점령하고 장미산성에 올랐다. 그는 멀리 학이 나는 비선혈을 보았다. 그는 조선의 명혈을 끊기 위해 모사꾼두사충을 보냈다. 그러나 두사충은 그 곳을 볼(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사람들은 파괴의 눈으로는 그 곳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르면 다시 그 곳이 파괴될 운명에 처한다고 했다.’ 청년은 전설을 생각하며 그 곳을 찾는다. 그가 그 곳에 가는 이유는 용서를 빌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그곳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독수리의 유혹과 들짐승의 공격을 받으며 숲에 도달하나 결국 길을 잃는다. 그가 두려움에 떨 때 새 한 마리가 나타나 그의 눈을 공격한다. 그는 피를 흘린다. 아침이 오자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숲의 기운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전설의 장소로 간다.

DIRECTING INTENTION

어느 날, 고향 충주의 남한강변을 산책하다가 찾아오는 사람 없이 버려진 무덤을 보았다. 무덤에는 풀이 우거지고 비석 뒤에는 ‘어느 대학교 친구들’이라는 글이 있었다. 사연이 있는 듯해서 알아보니 6.3때 죽은 어느 대학생의 묘라고 했다. 6.3의 ‘주역’이라 말하는 정치인들은 그 강을 파괴하려는데(그들은 나라를 구원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은 이는 그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담배 하나를 붙여 놓아주고 말 없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물의 기원’이라는 영화를 생각했다.

FESTIVAL & AWARDS

2009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DIRECTOR
김응수

김응수

1996 <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
2004 < 욕망 >
2006 < 달려라 장미 >
2007 < 천상고원 >
2008 < 과거는 낯선 나라다 >

STAFF

연출 김응수
제작 박기웅
각본 김응수
촬영 박기웅, 김응수
편집 김응수
출연 김태훈, 채희숙, 전호식

PROGRAM NOTE

‘감독이 고향 충주의 남한강변 주변에서 6.3 학생운동 때 죽은 대학생, 김중배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기원이지만, 그 잊혀진 사건의 정확한 복기가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그랬다면 영화는 쉽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관심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 애도되지 못한 시간의 흔적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불러올 것인지에 있을 때, 그건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 불가능한 지점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화법으로 역사의 그 구멍을 응시할 수 있을까. <물의 기원>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에 이어 감독의 그런 고민이 치열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6.3 운동이 일어났던 당시 학교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기억, 혹은 시위현장에 얽힌 일화를 말하는데, 둘은 대화한다기보다 각자 다른 어딘가를 응시하며 독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는 겨울이다. 그런 다음 등장하는 2부에서 두 남녀가 서 있던 무덤가에 또 다른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엄마가 남긴 그림 속의 풍경을 찾아 그 곳에 왔고 그 또한 어딘가를 응시한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다. 두 부분이 계절적 변화로 이어지지만, 시간상 연속적이라거나, 서사적으로 연결된다고 단언하기에 둘의 고리는 헐겁고 무엇보다 각 부분은 그 자체로 끊임없는 낯설음을 자아낸다. 다만 이들의 언어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무언가의 주변을 지독하고 슬프게 떠돌고 있다는 점, “진실은 말이 아니라 대기 속에 있다”는 영화 속 문장처럼, 수많은 말들이 영화의 풍경 속에서, 그 풍경의 시간과 역사 속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속으로 흩어져버린다는 인상을 기억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대체로 현실감을 놓아버린 듯한 장면들이지만, 이들 틈에 1964년도의 기록화면과 2008년 촛불시위의 현장, 침묵하는 충주댐의 야경이 삽입되고 사운드와 이미지가 충돌할 때, 우리는 역사의 일방적인 시간이 영화적으로 찢겨지고 여러 방향으로 열려 여기저기서 부유하는 듯한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그 순간에 파괴자의 눈이 아닌 피를 흘리는 눈이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문구를 빌리자면, 세상의 무심한 망각에 대해 “용서를 빌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남다은/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