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2018 (제44회)

경쟁단편

김현수 | 2017| Experimental | Color | DCP | 9min 45sec (K)

SYNOPSIS

그는 이유없는 폭력을 가했다. 폭력이 가해지는 동안 그 누구도 방패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21년을 혼자서 살아가던 나는 곧 사라질 공간을 기록하기로 한다.

DIRECTING INTENTION

나는 교과서 속의 화목한 집에 살 수 없었고, 늘 피해야 했으며 그런 와중에 늘 사랑을 강요받았다.
다들 내가 사랑받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사랑에 대한 대가로 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나의 상처 투성이인 공간이 사라진다.
나의 상처, 상처 속 문제의 근본, 결국 뿌리에 대하여.

FESTIVAL & AWARDS

2018 제5회 학생실험영화제 수상

DIRECTOR
김현수

김현수

 

STAFF

연출 김현수
촬영 김현수
편집 김현수

PROGRAM NOTE

김현수 감독의 <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의 기능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 다. 이 영화의 화자는 아마도 성장 과정 내내 난폭한 아버지의 지속적인 육체적, 언어적 폭력에 시달려온 딸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흉터로 빼곡한 역사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표현되지 않는다. 집 평면도와 연도 표기와 해당 방이나 영역이 제시된 뒤, 그 방이나 영역의 스틸 이미지 위에 아버지의 욕지거리를 가감 없이 옮겨 쓴 문장들과 자신의 신체적 피해를 짧고 굵게 기록한 문구들이 고장 난 점멸등처럼 깜빡이며 과거에 벌어진 참극들을 단편적으로 일러준 다. 부엌 수납장에 꽂힌 식칼 위에는 ‘WEAPON’이란 글자가, 안방 장롱 모서리에는 ‘정수리에 다섯 바늘’이란 글자가 서늘하고 불안하게 명멸한다. 그러다 급기야 거실에서 TV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 위로는 그 이미지의 표면적 평온함을 저주하듯 검은 낙서가 마구 칠해지기까지 한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놀이나 상품이나 교양으로 향유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화는 못다 지른 비명이나 누를 수 없는 구토나 무시무시한 저주로서 소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의와 규율은 미리 주어져 있는 게 아니기에, 영화를 간절히 필요로 한 작자에 의해 얼마든지 시험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공포와 분노와 상처와 대면하기 위해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되새김질하여 스크린에 마른 핏자국처럼 찍어낸 이 비릿한 에세이를 보고 있으면 이도 영화의 기능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경 / 서울독립영화제2018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