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가 있는 곳

서울독립영화제2010 (제36회)

본선경쟁(단편)

이상일 | 2009|Fiction|Color|HD|30min

SYNOPSIS

몇 년 전, 그는 아내와 딸을 외국으로 보냈다. 딸의 유학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그와 아내의 소원한 관계가 진짜 이유였다. 그는 함께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한국에 남아 낚시로 소일하던 그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아내는 귀국한다. 수색선에 올라 애타게 남편을 찾는 여자에게 해안경찰은 아마도 사망했을 거라고 알려 준다. 그녀는 딸이 그에게 쓴 편지를 읽고, 녹음된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낚시했던 곳에 가 본다. 어디에도 없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나지막이 다짐을 내뱉는다.

DIRECTING INTENTION

멀리 실종자를 찾는 조명탄이 조용히 타 들어가며 떨어져 내린다.
어둠을 삼키듯,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빛을 바라보며 그는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섬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바위였다.

FESTIVAL & AWARDS

2009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0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DIRECTOR
이상일

이상일

2004 <팔>

2004 <비와 다리>

2005 <장마>

2005 <비상구>

STAFF

연출 이상일
제작 김지열
각본 이상일
촬영 정재근
편집 이상일
조명 김종선
미술 이상일
음향 유호정
음악 김재홍
CG 오슬기
출연 서영화, 김한희, 이혜린, 정영기

PROGRAM NOTE

남자는 섬에서 사람을 낚은 적 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중 파도가 시신을 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도 자취를 감춘다. 실종된 것이다. 아내는 시신을 찾기도 어렵다는 경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섬으로 들어간다. 육신을 찾기보다는 육신이 남기고 간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다. 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단절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살을 베어버릴 것 같고, 시선이 불일치한 쇼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영화 곳곳에는 서슬이 시퍼런 검이지나간 것처럼 곳곳이 갈라져 있다. 부부는 한 침대에 앉아서도 서로 마주 보지 않는다. 소통은 없고 불통만 있다. 카메라는 남편의 등에 집착하고, 사운드는 화면을 벗어난 아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영화에서 유대감을 찾기도 힘들다. 부부 사이에는 남편의 첫사랑 문제로 냉랭한 공기가흐르고,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없는 딸 때문에 모녀나 부녀나 어색해 보이긴 매 한 가지다. 가장 도드라진 공간은 섬이다. 남편이 최후의 여행으로 떠났던 섬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육지와 분리되어 있다. 육지가 생이 약동하는 곳이라면 섬은 죽음이 잠드는 곳이다.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섬>처럼 고요한 섬은 적막한 기운으로 넘쳐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고 있는 섬은 죽음을 형상화한다. 바다가 섬을 감싸고 섬이 바다를 지탱하는 모양새다. 일견 고다르의 카메라, 비스콘티의데카당스한 주제의식, 안토니오니의 실존주의적인 풍경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유럽 영화의 계보를 좇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시선을 제거한 끝에 완성된 주제의식은 감독 고유의 것으로 보인다. 유대의식의 부재나 공간적 단절은 있되, 그 단절의 골을 메우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 즈음, 생과 사는 하나로 흐른다. 남편이 마지막으로머물고 섬에서 악전고투하는 아내의 모습은 거친 풍랑과 사투를 벌이는 바다 사나이처럼 완강하다. 아내의 몸부림이 말하듯 영화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이 영화의 방점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이다. 암초가 조류를 바꾸듯 죽음은 다음생으로 가는 여행인 것이다.

이도훈 / 서울독립영화제2010 관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