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서울독립영화제2002 (제28회)

존 카사베츠 회고전

존 카사베츠 | 1968 | 드라마 | 35mm | B&W | 130min

SYNOPSIS

이 영화에 대해 카사베츠는 “내 삶을 곤란하게 했던 사람들, 내 뒤섞인 감정들의 히스테리와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거만한 제작자들에게 시달린 나머지 해고되는 비참함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좌절시킨 집단 내에 돋아난 영혼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숙성시키고 싶어했다. <그림자들> 당시의 독립영화 제작 시스템으로 돌아간 그는 자유분방한 리듬으로 화면을 연출했다. 각자 다른 일들을 해나가는 와중에 짬을 내어 카사베츠의 집에 모인 배우들은 밤을 새는 촬영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를 다져나갔다. 연기 이외에도 자잘한 스태프 역할을 도맡기를 감내하던 배우들은 스스로의 영혼을 통해 캐릭터의 정서를 끌어냈다. 그 결과 <얼굴들>은 참을 수 없을 듯 무용하게 반복되는 세계를 벌거벗긴 것처럼 드러낸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카사베츠는 중산층의 정신적 불행과 감성적 허기를 가혹하게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앙상하게 내던져진 존재들에게 마음껏 어우러지고 부대낄 수 있는 생명력의 옷을 입힌다. 영화는 리처드와 마리아라는 두 부부의 방황과 파경을 향해 질주한다.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는 남녀는 각자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리처드는 매혹적인 창녀 지니에게 끌리고, 마리아는 양아치 체트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일탈과 탐닉도 그들의 황폐함과 공허감을 채워주지 못한다. 춤을 추듯 유동하고 때로 투박하게 시선을 돌리는 카메라는 누벨 바그의 변용인 동시에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전조였지만 카사베츠는 당대의 트렌드에 안주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피부의 표층에 최대한 밀착하여 인물들의 내층에 감춰진 감정의 선을 끌어낸다. 정확히는 카메라가 곧 인물의 피부가 된다. 그런데 배우들은 카메라의 주문에 걸린 채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아랑곳없는 듯 즉흥적으로 뇌까리고 더듬거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분노하는 인물들을 담고, 그들은 얼굴의 주름과 몸의 약동을 통해 자신을 무심하게 에워싼 시간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그 태도는 예측 불가능하고 모호한 시간, 불편함과 권태를 낳으며 사멸해 가는 시간을 견뎌나가는 존재의 내밀한 진실이다. 극적 허구의 거짓됨을 용납하지 않은 채 (때로 행동의 축과 어긋난 곳을) 길게 바라보는 카메라가 그 진실의 지층을 강렬하게 채취한다. 현재라는 지층, 그것은 정작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하잘 것 없는 순간들의 집요함이자, 존재의 욕망을 체현할 수 있는 순간들의 자발성이다. (김지훈, 영화평론가)

DIRECTOR

존 카사베츠

 

STA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