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진화론 – 갈아 만든 에덴

서울독립영화제2004 (제30회)

독립장편특별전

김정구 |

SYNOPSIS

두 남자가 지하창고에 갇혔다. 완전히 밀폐되어 있고 아무도 그들을 구조해주지 않는다. 성격이 다른 이 두 남자는 폐쇄공간에서 어떻게든 살아나야만 한다

그 공간은 그들에게는 감내해야 할 공간이고 이루어야 할 그들의 세계이다.
두 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적 정체성을 혼란을 겪는다.
경제 원칙도 생겨나고 권력과 순종이 생겨난다.
나름대로의 한 세계를 이룰 골격들이 만들어진다.

한 남자는 생물학적인 성전환을 거치게 된다.
마치 암수가 부족한 생물이 자연 성전환을 해서 암수를 맞추듯 온전한 한 쌍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생겨난 로맨스는 점점 가학적이 되어간다.
쾌락으로서의 섹스가 죽음으로 가는 가혹한 섹스로 변질된다.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한 사람의 순교로 한 사람의 희생으로 그들의 2세가 태어나고
그들에게는 삶의 가장 끝을 맛본다.
하지만 그런 순간 그들은 허망을 발견한다.
그 허망은 자신들이 힘들게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엷은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그런 것이다.
되돌리기엔 때가 너무 늦었고 살던 세계와 너무 멀어졌다.

DIRECTING INTENTION

밀폐된 공간에서 뜻하지 않게 갇히게 된 두 남자의 얘기이다.
닥쳐올 그들의 상황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그들은 원치 않았지만 새로운 한 세계를 이루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을 때
과연 이 두 남자의 본능은 온전한 자신들만의 한 세계를 구축해 낼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의 시간이 제대로 진화할 것인가?
혹은 퇴화, 혹은 원초의 세계로 역진화 할 것인가.
여기에 나의 몇 가지 의미 없는 질문들이 보태어져
주인공들이 이루어야 할 삶을
낯설고 불편한 이미지와 스타일로
하나의 論을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
또한 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 세계와 실존과 사고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얇고 낯선 것인가를 함께 느끼고 싶다.

FESTIVAL & AWARDS

2004 서울독립영화제2004

DIRECTOR
김정구

김정구

1997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2001 <샴, 하드 로맨스> 
2002 <사자성어>
STAFF

연 출 김정구
제 작 김일권
각 본 김정구
촬 영 나희석
조연출 유하
연출부 김참섭, 김남희, 진수정
촬영부 김동환, 이호발
제작부 박호진
조 명 김홍완, 정동헌, 안유학
스크립 이은정
편 집 문인대
분 장 이명자
음 악 콩나물시루
출 연 박정환, 조은경

PROGRAM NOTE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1997)와 <샴, 하드로맨스>(2001) 등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 단편들을 통해 주목 받았던, 김정구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역진화론>으로 다가왔다. 음울한 상상력의 이 작품은 극한적인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 사랑은 처절하며 사회의 모든 관념과 가치를 허물어뜨린다. 두 남자가 지하창고에 갖힌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이 구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밀폐된 공간에 갖힌 상반된 성격의 두 남자는 잦은 갈등을 겪지만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듯이 이들 사이에는 서열이 생겨나고, 강한 남자가 약한 남자를 범한다. 이렇게 가학적인 상황에서 강제로 형성된 그들 사이의 애정관계는 발전을 거듭해, 한 남자의 성정체성을 뒤바꾸고 종국에는 남자의 생물학적인 성까지 바뀌어 버린다. 같은 성을 가진 미생물이 한곳에 있으면, 종족보존을 위해 성을 바꾸는 것처럼 남자가 여자로 변이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남자의 아기를 갖는다. 밀폐된 지하공간은 이들에겐 또 다른 에덴이고 그곳에 갖혀 있다는 원죄로 인해 가학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성이 바뀌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그들이 먹는 참치캔과 양파링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 마늘과 쑥만 먹었던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는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역진화론>은 이처럼 기괴한 상상력으로 인류탄생 설화인 성경 창세기와 한민족의 탄생신화인 단군신화를 비틀고 있다.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절망적인 세상에 대한 가혹한 한탄에 가깝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