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하우스

서울독립영화제2004 (제30회)

중편경쟁

노내경 | 2004 | Fiction | DV | Color | 38min

SYNOPSIS

정영과 재범은 30대 초반의 부부이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정영은 집에서 글을 쓰는 재범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놓고 나가곤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들의 일상에는 균열감이 생기고 아이를 갖는 문제로 다투게 된다. 재범은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정영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그녀가 준비해 놓은 식사도 건드리지 않는다.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혼자서 잠들고 밤에는 폭식을 하는 정영.
어느 날 저녁, 조용한 집안에 전화벨이 울린다. 방안에서 재범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영은 문을 두드리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얼마간의 망설임 끝에 정영은 재범의 방문을 연다. 그러나 그 안은 무언가 휩쓸고 간 듯 난장판이 되어 있고 재범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책상 밑에서 거대한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그 날 이후 정영은 재범 대신 벌레를 먹이기 시작한다. 벌레는 재범이 일상적으로 먹던 식사를 거부하고 그녀의 토사물과 체액만을 받아먹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영은 점점 피폐해지며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그에 반해 벌레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관계의 어떤 한 측면에 관해 생각해 보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관계의 어떤 경로나 측면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양상이다. 이 영화에는 먹는 행위, 먹이는 행위가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편협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측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여성을 중심에 놓은 감정적 선의 극단에서 그려보고자 했다.

DIRECTOR
노내경

노내경

1996 <무책임한 중얼거림들> (16mm,10분)
1996 <욕조> (16mm, 12분)
1998 <응시> (16mm, 15분)
       제2회 여성영화제
STAFF

연 출 노내경
제 작 송희연
조연출 김태봉
촬 영 여철수
미 술 함영준
출 연 이소희, 김태범

PROGRAM NOTE

그 ‘집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루 종일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 아내는 남편을 위해 끊임없이 식탁을 차리지만 손도 대지 않는 남편 대신 혼자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다 토하기를 반복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유일한 경험은 건조한 섹스 뿐. 부부라는 이름의 타인들이 살고 있는 곳. 두터운 커튼이 쳐진 어두컴컴한 그 곳에서 결혼과 가족, 사회라는 관습과 제도 속에 갇힌 여성은 몸도 마음도 나날이 황폐해진다. 노내경 감독의 <인 하우스>는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 겪는 여성의 기이한 환상을 담는다.영화에서 주인공 정영이 속한 공간은 모두 남성들에 의한 것이다.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서 직장, 그리고 범죄와 경찰로 대표되는 공적영역까지 그녀는 온통 남성들에 의한 지배와 억압 속에 갇혀있다.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섹스와 술기운을 빌린 직장선배의 비릿한 추근거림, 정체불명의 남자들에 의한 강간, 그리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사의 끈끈한 심문. 그녀에게 가해지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이 모든 성적 폭력들은 그녀를 억압하는 거대한 남성중심 사회의 서로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 그녀의 체액이 묻은 토사물을 먹는 남편이나 그녀의 몸 안에서 나와 꿈틀대는 벌레들은 이러한 억압과 갑갑한 현실에 대한 공포와 환상, 내부에 감춰진 불안감의 표현일 것이다. 영화는 마치  ‘카프카의 ’변신‘이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처럼 ’변신‘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들의 공허한 관계와 그에 따른 변형의 공포를 담는다. 여기서 그녀의 남편이 벌레로 변한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인 없는 변형이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변신과 그에 따른 공포를 벌레로 변한 남편이 아닌 그를 ’변신한 벌레로‘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으로 치환한다. 현실과 환상의 교차 속에 억압된 여성의 심리, 그리고 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가능성을 담은 낯설고 불안하며 기괴함으로 가득 찬 영화.모은영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