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특별초청2
오멸 | 2012 | Fiction | B&W | DCP | 108min
SYNOPSIS
1948년 섬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평온하던 마을에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주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군인들을 피해 중산간 동굴로 숨어들어 간다. 그렇게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동굴 생활이 시작되지만 온통 암흑뿐인 동굴처럼 살아남는다는 희망은 어두울 뿐이었다. 집의 돼지를 걱정하는 하르방은 마을에 다녀오려 하지만 마을 청년들은 동굴이 발각될까 두려워 만류한다. 주민들은 더 높은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지 이대로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해진다. 주민들은 서서히 불안과 두려움으로 동굴 생활을 이어가는데…..
DIRECTING INTENTION
나에게 4.3은 바람처럼 자연스레 만나 가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망각되기를 기대하는 이들에 떠밀려 언젠가는 작은 이야깃거리도 못 되어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도 그러했을 것이다. 어둡고 추운 동굴 속에서 힘겹게 살기 위해 버티다가 죽어 간 이 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억울하게 죽어 간 영혼들과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까지도 함께 달래고 4.3은 개인의 숙제가 아닌 시대의 숙제이고 우리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나누고 싶었다.
FESTIVAL & AWARDS
2012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시민평론가상, CGV무비꼴라쥬상
DIRECTOR

오멸
STAFF
연출 오멸
제작 고혁진
각본 오멸
촬영 양정훈
편집 이도현
조명 추경엽
음악 전송이
CG 신민철
출연 문석범, 김동호, 양정원, 장경섭, 성민철
PROGRAM NOTE
1948년, 제주도. 해안선 5km 밖의 주민들은 무조건 폭도로 간주하여 사살하겠다는 군의 소개령이 떨어진다. 사태가 이틀 정도면 종결되리라고 믿는 순박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동굴에 몸을 숨기고, 그사이 마을을 점령한 군인들은 주민들을 빨갱이 집단으로 몰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운다. <지슬>은 오멸 감독의 전작인 <이어도>에 이어 4.3 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어도>가 어느 여인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 일상에 불어닥친 파국을 극도로 단순하게 눌러 마치 비극적 사건의 추상적 형상을 마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면, <지슬>은 사건이 개별 인간들의 일상에 몰고 온 파국을 군인과 주민, 두 집단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토대로 내려가 다각도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물론 롱숏, 롱테이크로 담아낸 제주도 고유의 풍광이나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 어려운 토착민들의 사투리와 섬사람들의 기질에 배인 어떤 정취가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감흥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감흥은 아마도 오멸 영화 특유의 초현실적인 기운과 닿아 있을 텐데, <이어도>와 <지슬>의 그 기운은 현실 너머라는 의미 혹은 미학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사건에 서린 수많은 죽음, 아니, 죽지 못하고 떠도는 망자의 한과 관련된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지슬>은 신위(영혼을 모셔 앉히다), 신묘(영혼이 머무는 곳), 음복(영혼이 남긴 음식을 먹는 것), 소지(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라는 소제목을 기입하며 제의적 형식을 취하는데, 그 형식은 1948년과 2012년 사이, 망각을 유혹하는 60여 년의 시간차를 지워 버린다. 말하자면 영화는 학살의 현장을 담으며 동시에 그 학살에 대한 애도의 제의를 진행하고(아마도 영화만이 죽음을 보여 주면서 그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시선을, 말하자면 과거의 죽음과 미래의 애도를 겹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과거와 현재, 혹은 사건과 사건 이후는 분리된 시공간이 아니라, 서로에게 개입하며 서로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운명에 놓이게 된다. <지슬>은 표면적으로는 광기에 사로잡힌 군인 집단과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한 주민 집단으로 이분화하고 그 대립에서 파토스를 끌어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단순한 이분화에서 벗어나 두 집단에 서서히 퍼져 가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에 의해 무참히 부서져 가는 인간성의 저열하고 얕은 바닥을 보여 주는 데 목적이 있다. 동굴 안에서 일상적인 수다를 떨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며 정답게 감자를 나눠 먹는 주민들은 악에 물들지 않은 토착민들의 순수함을 부각하거나 신비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 불가능한, 그러나 인간에 의해 벌어진 상황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일상적 평온함과 잔혹한 비극의 그 가까운 거리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며 궁극에는 사유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남다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