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의 기술(記述)
서울독립영화제2006 (제32회)
장편경쟁
이강현 | 2006 | Docu | DV | Color |61min
SYNOPSIS
매일같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사건과 사고라도 그것이 일상적이라면 내성이 생긴다. 2000년을 전후로, 한국의 조간신문과 저녁뉴스시간엔 범인도, 용의자도 없는 사회적 타살의 소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통곡의 소리로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그 소식들은 그러나, 그 건조한 단신기사처럼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더욱 더 절망적인 것은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도, 단죄하려는 시도도,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순치시켜버린 것일까.
DIRECTING INTENTION
세상은 여전히, 신파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은, 이 세계의 작동방식이라는 것이 아직도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신파의 소재들 중에서 근 10여 년간 이곳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던 파산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이 소재 속에는 의심할 나위 없이 보편적인 고통의 신음과 통곡이 넘쳐났으며, 지난 10여 년간의 한국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요소들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단계, 혁명적 단절 없이 몰락한 한 세대, 등등- 이 요점정리 노트처럼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소재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영화는 소재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야만 이 고통이, 특정 정책의 잘못이나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앞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싸움의 대상 그 자체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ESTIVAL & AWARDS
2006 제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DIRECTOR

이강현
노동자-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
STAFF
연출 이강현
제작 영화제작소 청년
각본 이강현
촬영 이강현, 김경만, 구선희
편집 이강현
사진 허성호
효과 허성호
조명 김경만, 구선희, 김진상
음향 강민석
녹음 황세은
믹싱 황세은
출연 이승희, 이미나, 한상대
PROGRAM NOTE
다소 산만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적인 몽타주를 보여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그래도 난 지금 행복해요.” 라는 식의 인터뷰 장면 다음에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듯, 검은 화면에 웅 소리를 들려준다. 바로 다음에, 세계경제포럼의 자본가들 모습이 개입되면, 이제 그 노동자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되고 그 상태에서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이렇듯 다양한 시공간을 교차편집하며, 또 거리의 문자, 광고, 티브이 화면, 대한 뉴스 등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감독이 기술(記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언뜻 이 영화는 파산을 기술(記述)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그것은 파산만이 문제가 아니라, 파산 이면에 존재하는, 그 파산을 낳은 근본적인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파산의 문제가 해결된다하더라도 빈곤과 착취의 문제는 여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독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한 파산을 슬쩍 기술(記述)하면서, 본질적인 그 무엇의 문제를 느끼게(이해하게가 아니라) 하려 한다. 이를테면 정서적 선동인 것이다. 386기념식을 현재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모습과 격렬한 투쟁 현장을 교차시키는 데에서 그 의도는 명확해진다. 논리적인 설명을 버리고 정서적 호소에 의지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어렵게 느껴진다.
조금은 감상적인 장면들(이산가족찾기 등등)이긴 하지만,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을 나열하며,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닐까?”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갖는 의미는 확실하다. 자본이 더욱 공고해지기 전에 서둘러 시간을 앞당기자는 얘기다. 파산되어 나가고 있는 민중들이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파산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記述)은 없지만, 그 절절한 신파인 파산에 대한 기술(記述)을 통해, 그런 문제의식이 왜 아직도 유효한지를 마음으로(머리로가 아니라) 깨닫게 하는 영화다. 그렇다, 영화는
처방이 아니라 묘사다.
이정수 / 서울독립영화제2006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