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없는 삶

서울독립영화제2006 (제32회)

디지털 삼인삼색 2006:여인들

에릭 쿠 | Korea | 2006 | 39min | DigiBeta | Color | Short

SYNOPSIS

싱가포르에서 가정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인도네시아 섬에 남편과 한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젊은 여인 ‘시티’의 4년 간의 삶을 다룬 이야기. 영화는 그녀가 싱가포르에서 각각 다른 세 가족들을 위해 일하면서 겪는 고난과 역경을 그녀의 시선에서 포착한다.

DIRECTING INTENTION

20년 전만 해도 흔치 않았던 가정부들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다. 아이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부를 두고 있지만 자신들이 그 가정부들에게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다. 그들에게 가정부는 그저 하나의 필수품일 뿐, 그 가정부가 자신들의 가족을 떠나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되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방을 닦고, 우리 대신 우리의 아이를 목욕시키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가정부로서가 아닌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캐릭터 ‘시티’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희망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녀의 꿈을 무엇일까? 이를 위해 그녀는 무엇을 희생해야 했을까?

DIRECTOR
에릭 쿠

에릭 쿠

 

STAFF
PROGRAM NOTE

싱가포르에는 15만 명의 외국인 가정부들이 일하고 있는데 아들 대부분은 인도네시아인들로 가족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휴일없는 삶>은 인도네시아인 시티가 싱가포르의 서로 다른 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겪는 고난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먼저 그녀가 인도네시아를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이어 고급스런 집의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시티가 영어를 배우는 과정과 그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태도와 자세, 어법을 학습하는 과정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고 시티가 싱가포르의 가정에서 일을 하는 동안 시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단지 목소리를 통해서만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정부들은 하 집에서 같이 살지만 일을 부리는 것 외에 주인들은 이들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기에 이들은 사실 생활의 일부가 아니다. 시티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핀잔을 주는 주인들의 모습이 그저 목소리로만 처리된 것은 그래서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주인과 종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그래서 기티의 얼굴을 보여주고 그녀가 가정에서 일하는 일상적 제스처들을 담아낸 장면들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리버스 쇼트가 없는 부재한 주인의 냉혼한 시선이 담기게 된다. 이러한 구도는 관객들을 방관자가 아니라 영화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부재한 얼굴을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몸은 계속 등장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시티의 모습에서 우리는 외국인 가정부의 가혹한 위치를 느끼게 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화면 위로는 날짜가 매겨지는데 이는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해야만 하는 가정부들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표현한다. 시티의 곤경과 수난이 주를 이루지만 이 영화는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시티는 그간 모은 돈으로 고향에 집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시티는 아이에게 "다시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란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한거란다"라고 말한다. 자기희생과 절망적인 순간을 넘어 4년간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시티는 집을 마련하는 꿈을 이뤘다. 이 영화는 그런 꿈을 이루는 의지와 관련한 영화이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