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크

서울독립영화제2017 (제43회)

경쟁부문 장편

정희재 | 2017 | Fiction | Color | DCP | 110min (E)

SYNOPSIS

열여섯 살의 소녀 정애. 그녀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 노영옥으로부터 찾아온 연락이다. 정애는 서울의 재개발지역에서 아버지 윤영호와 함께 살고있다. 영호는 말기의 암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포기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정애에게 포기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정애는 얼굴을 본적없는 엄마 노영옥을 찾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선다.

DIRECTING INTENTION

어느 여름날 식사자리. 소주 한 잔 걸치던 아버지께서 다짜고짜 말씀을 건네신다.
"이제 그만 됐으니 포기해라. 그럼 편해진다."
조금 더 힘을 내보라는 격려를 듣고 싶던 나에게 왜 나의 아버지는 포기하란 말 뿐인지 화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 그만 포기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바보같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붙잡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때 식당 안 TV에서 야구선수 박찬호의 은퇴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대전 한화구장 한가운데로 꽃목걸이를 두른 채 딸들의 손을 잡고 힘차게 걸어가는 박찬호 선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TV만 바라보던 중에 아버지가 혼잣 말씀을 하신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포기하라고 권유하던 그의 말에 동요하던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와 '정애'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크'는 열여섯 소녀가 스스로 바래왔던 희망을 포기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도망쳐 온 곳으로 용기 내어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아이의 여정에 응원을 보내고 그녀의 선택에 공감하는 마음들이 우리사회로 돌아와 따듯한 변화를 가져오면 좋겠다.

FESTIVAL & AWARDS

2017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정희재

정희재

2009 <복자>

20011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STAFF

연출 정희재
제작 영화사 브리드
프로듀서 문정민
각본 정희재
촬영 장우영
편집 이영림
조명 황성록
음악 이민휘
미술 최영미
출연 노정의, 박희순, 김학선, 김고은

PROGRAM NOTE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빠, 집을 나간 언니, 소식이 끊긴 엄마, 그리고 재개발을 앞둔 낡은 집. 열여섯 살 정애에게 사라진 것, 아니, 사라질 존재들이다. 어느 날, 낯선 병원에서 엄마의 이름으로 ‘연고자 확인 의뢰서’가 날아오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소녀는 엄마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그 길에 친구 효정이 동행한다. 엄마의 재혼을 앞둔 효정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친아빠를 무작정 찾으러 가는 길이다. 말하자면 <히치하이크>는 외로운 소녀들이 엄마, 아빠를 찾아가는 로드무비이자 성장담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고 말기에 이 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여정의 초반에 이미 극적인 순간들과 이상한 우연들이 끼어든다. 그때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절실한 사연이 있어서 목적지로 가는 길은 자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이고 갈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들은 각자의 맥락 안에서 납득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연되는 동안, 정애는 영화가 시작할 때보다 더 비극적이고 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 앞에 놓이며 갈등의 자리에 서게 된다. 소녀의 여정은 애초의 목적지로부터 멀어져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생각할 때쯤, 이 영화는 그 목적지보다 솔직하고 절실하며 선한 깨달음을 소녀에게 안긴다. 여정의 후반, 영화가 안간힘을 다해 행한 선택은 위태롭게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이 세계를 튼튼하게 지탱한다. 다행스럽고 따뜻하며 성숙한 선택이다.

남다은 / 서울독립영화제2017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