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

서울독립영화제2002 (제28회)

존 카사베츠 회고전

존 카사베츠 | 1959 | 드라마 | 35mm | B&W | 82min

SYNOPSIS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림자들>은 정말로 어느 날 ‘쨍하고 빛을 본’ 영화다. 카사베츠는 몇 편의 B급 영화에 출연한 무명 배우 출신이었고, 출연배우들의 처지 또한 메이저 영화의 크레디트에서는 한참 뒷줄에 등재되었던 이름들이었다. 4만 달러로 제작된 이 16mm영화는 미국을 넘어 유럽을 돌고 돌았고 『사이트 앤 사운드』를 비롯한 공신력 있는 저널들은 부랴부랴 특집 지면을 할애했다. 그와 동시에 즉흥의 신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대화와 로케이션도 정해지지 않았고, 거리에서의 장면은 몰래카메라처럼 촬영되었으며, 모든 소리는 거칠게 현장에서 녹음되었다는 내용들이 그 신화의 골자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림자들>은 영화기법 백과사전을 휙 하니 훑어보는 듯한 경쾌한 영화다.
백과사전이란 말은 이 영화를 이루는 기법들이 양적으로 풍성할 뿐더러 질적으로도 체계적으로 배열되었다는 점을 뜻한다. 영화 초반부, 베니와 두 친구가 술집에서 여자와 짝을 맺는 장면은 동일한 모습으로 포착된다. 이렇게 제시되는 여자들은 구애의 태도로나 외모로나 상당히 다르다. 이처럼 카사베츠는 인물들의 구도와 카메라로부터의 거리를 통해, 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교환관계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재즈 뮤지션인 흑인들은 카메라를 꽉 채운 채 그들만의 문화적 영역을 이루고, 거리에서의 세 친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치기를 뽐낸다. 클로즈업은 몸을 맞댄 남녀의 친밀감과 그들 각자의 공유될 수 없는 심정 모두를 동시에 잡아넣는다. 로케이션 장면에서도 카사베츠는 주인공들이 혼자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순간과, 서로 어울려 대화하고 부대끼는 순간을 세심하게 구분한다. 외형상으로는 고다르에 견줄 만한 점프 컷과 인터뷰 스타일의 시점 쇼트도 그런 세심함의 소산이다. 나직하지만 간드러진 자태로 떨리는 트럼펫의 애드립, 침묵과 잡음을 변화무쌍하게 넘나드는 현장 음향의 탄력성은 이 모든 시도들에 윤활유를 공급한다. 기본적인 코드와 그 변주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룬 재즈 세션이다.
이야기상으로 볼 때 이 세션은 하나의 주제 파트만을 연주하지 않는다. 베니와 레일라, 휴 3남매는 각자의 길에서 방황하다가 서로 만나고 엇갈린다. 건달 베니는 목적 없이 방황하고 레일라는 백인과 사랑에 빠진다. 첫째인 재즈 싱어 휴는 매니저와 트러블을 겪고 레일라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들의 어두운 면모를 개별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을 쫓아가다가 뒷면에 그 어긋난 욕망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들은 격렬하게 상충하고 서로 다른 결말로 연장된다. 비트 세대의 시대정신이 짜 맞춘 뉴욕 흑인 일가에 대한 모자이크. (김지훈, 영화평론가)

DIRECTOR

존 카사베츠

 

STA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