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Ⅰ
서울독립영화제2020 (제46회)
새로운선택 단편
무진형제 | 2020 | Documentary, Experimental | Color | DCP | 30min 34sec (E)
SYNOPSIS
노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물을 마시고 양말을 털며 일어설 준비를 한다. 노인의 등 뒤로 간밤에 그가 했던 잠꼬대 소리가 나지막하게 섞여 있다. 낮 동안 노인의 늙고 주름진 신체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고지서를 확인하고 외출을 한다. 밤이 되면 잠든 노인의 신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를 내뱉는다. 낮의 신체 활동의 이미지와 밤의 사운드가 한데 뒤섞여 천천히 흘러가는 노인의 시간에 그의 신체와 거주지를 둘러싼 환경이 개입한다.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노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간이지만, 지금은 혼자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마을의 풍경이 영상 말미에서 노인의 주거 공간으로 이어진다. 노인이 잠든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낡은 물건들만 놓여 있어, 한때 그곳이 식구들로 북적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노인의 잠꼬대와 깊은 숨소리에 맞춰 집안 구석구석을 돌다 보면 현실과 꿈을 잇는 장면 앞에 멈춰 서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평생 한 마을에서만 살아온 노인의 낮 시간을 담았다. 노인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식사를 하고 고지서를 확인하며 일상을 영위한다. 낡은 거주지와 다양한 자연환경의 교차 속에서 드러나는 노인의 신체 활동에 잠꼬대 소리가 겹쳐진다. 백세에 가까운 노인의 낮 동안의 신체 활동 이미지와 밤의 잠꼬대 소리가 중첩돼 노년의 활력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상에서 노인과 그의 주거 환경은 원중경의 시각적 거리감으로 제시된다. 노인의 신체성과 그의 주거 환경을 다양한 지점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각자의 노년과 거주에 대한 견해, 그리고 삶의 조건 등에 대해 묻게 된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무진형제
STAFF
연출 무진형제
제작 무진형제
각본 무진형제
촬영 무진형제
편집 무진형제
미술 무진형제
녹음 무진형제
출연 정점이
PROGRAM NOTE
이 영화의 제목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왔다. ‘‘길 위쪽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강이 흐르는 장면에 이어 잠에서 깬 듯 노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어 자식인 듯한 이와 전화로 통화하고, 식사하고, 약을 먹고, 우편물을 뜯어보는 등의 장면이 연달아 이어진다. 장면과 장면 사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편집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극 중 노인의 시간이 아래부터 위로 차곡차곡 축적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때 노인은 무리 지어 사는 밀림의 왕자 사자처럼 삼대가 모여 살기를 바랐다. 모두가 떠나 이 집에 홀로 남은 노인은 꿈에서나 사자가 되어 가족을 이끌 수 있다. 그마저도 이제는 과거형이다. 할아버지는 혼자 사는 지금의 삶이 익숙하다. 대신 그에게는 이 집이 밀림이고 집 안에 채운 물건들이 일종의 무리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시간은 마치 중력을 형성한 듯 집의 자장 안에서 그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한다. 얼굴에 깊게 팬 주름과 노동의 흔적이 남은 거칠거칠한 손가락과 세월에 마모되어 물기가 빠진 듯한 피부는 집 안의 모든 것과 자전하고 공전하며 대나무 숲을 이뤄 고요하고 담담하다. 그 안에서 노인은 다시 잠에 빠진다. 이번에는 어떤 꿈을 꾸게 될까.
허남웅 / 서울독립영화제202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