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다이어리
서울독립영화제2013 (제39회)
본선경쟁(장편)
정윤석 | 2013 | Documentary | Color | DCP | 93min
SYNOPSIS
90년대 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핵 위기를 거치며 보수적인 내각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1994년 “돈 많은 이들을 죽이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등장한 지존파의 존재는 당시 부패한 사회 기득권층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다. 지존파의 출현으로 촉발된 보수세력의 불안감은 다음해 터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통해 증폭되고,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김영삼 정부는 지존파를 사형시켜 사회 정화를 위한 본보기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DIRECTING INTENTION
1994년 전남 영광에서 20대 초반 아이들이 모여 “부자들을 증오한다”라는 구호 아래 사회적 불평등의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되었다. “인육을 먹었다”,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말로 회자되는 이들의 범죄 스토리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범행 동기로 표방한 최초의 연쇄살인범이자 한국의 압축된 성장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표면화되지 않았던 계급적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은폐시키며 스스로를 긍정해 왔고, 본 사건의 당사자 대부분들은 죽거나 혹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오늘날 이 전대미문의 사건 기록이 대부분 삭제되거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억상실증’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부유층들과 지식인들이 지존파의 분노에 대해 얼마나 큰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이 사건을 조사하며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기록한다’는 행위에 대한 냉정한 질문이다. 지난 세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의 남겨진 조각 속에서 발견되는 일상의 이미지들은 동시대 예술가로서 실천하는 ‘기록적 투쟁’에 가깝다.
FESTIVAL & AWARDS
2013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2013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IRECTOR

정윤석
2005 <박수>
STAFF
연출 정윤석
제작 정윤석
각본 정윤석
촬영 손광은, 허철녕
편집 정윤석
음악 강민석
출연 고병천, 김형태, 박상구, 오영록, 오후근, 조성애, 정형복, 한완상
PROGRAM NOTE
<논픽션 다이어리>는 사형을 앞둔 지존파의 ‘상상의 일기’를 담은 감독 자신의 설치 작품에서 시작된 영화라고 한다. 상상의 일기, 이것이 ‘논픽션 다이어리’의 출발점이다(‘다이어리’의 첫 번째 의미). 그 ‘일기’는 90년대의 주요 사건 ‘일지’로 확장된다(‘다이어리’의 두 번째 의미). 그 일지에 열거된 수많은 사건들은, ‘지존파 사건’ 만큼이나 불가해하다. 하나하나도 그렇지만, 그 불가해한 사건(들)의 동시성은 더더욱 불가해하다. 당대에도 그랬고,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역시 그렇다. 당대의 사건(들) 목격자의 증언, 현재의 전문가의 사후적 해석 등 그 사건(들)에 대한 담론들은, 결국은 그것의 불가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당대나 지금이나, 그 사건(들)을 재현하는 매스컴의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결국 공허할 뿐이다. 그 사건(들)에는 어떤 심연이 있고, <논픽션 다이어리> 역시 그 심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단, <논픽션 다이어리>는 ‘다이어리’의 두 가지 의미를 서로 병치시킴으로써, 즉 (결국은 사건을 회피하려는) 요란한 담론(들)과 사건(들) 내부에 담긴 침묵의 언어를 충돌시킴으로써, 그 사건(들)에 담긴 근본적인 질문을 재추동시키려 하고 있다. 어쩌면 ‘지존파 사건’은 뒤늦게 도래한 ‘러다이트 사건’은 아니었을까? 단, 러다이트가 ‘기계-사물’을 ‘인간-악마’로 여겼다면, 지존파는 (자신들을 포함한) ‘인간’을 ‘사물-악마’처럼 다루려고 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변성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