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서울독립영화제2020 (제46회)
단편 쇼케이스
조희영 | 2020 | Fiction | Color | DCP | 29min 32sec (E)
SYNOPSIS
어제 낮잠을 잔 지원은 평소와 다르게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책을 좀 보다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저 멀리 숲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 같던 나무의 나뭇잎들을 자세히 보니 살살 움직이고 있다. 산책을 간 숲에서 오래전 친했던 친구이자, 같은 사람을 좋아했던 혜영을 마주친다.
DIRECTING INTENTION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층위 안에서 한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결국 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FESTIVAL & AWARDS
World Premiere
DIRECTOR

조희영
2018 기억 아래로의 기억
STAFF
연출 조희영
프로듀서 정광은
각본 조희영
촬영 이진근
편집 조희영
믹싱 이제한
출연 공민정, 문혜인
PROGRAM NOTE
숲을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지원은 생수 한 병을 들고 산책을 떠나기로 한다. 마냥 평화롭던 산책은 예기치 못한 인물 혜영(지원의 학교 후배)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지원은 순간 너무 놀라 도망쳐 버린다. 숲 한편으로 숨어들어 숨을 고르고 담배를 피우려던 찰나 혜영이 등장한다. 둘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조우하고 그다지 관심 없는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 둘은 각자 한 병의 생수를 들고 산책을 하다, 담배를 피우려고 하나 실패하고(라이터가 없어서) 같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둘은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이름하여 ‘영광’.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예기치 않게 대화를 시작하게 된 두 사람. 처음엔 가벼웠으나 이야기는 역시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들의 감정적 파고는 높아져 간다. 비로소 지원이 혜영을 만났을 때 질겁하고 도망갔던 이유가 드러난다. 이유는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온도로 감정의 극을 치고 나서 이들은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영광은 이제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 이 둘에게 영광이 중요했던 순간이란 존재했을까. 각자의 서사를 따로 떼 놓고 보면 각자에게 영광은 의미가 있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온전히 둘 사이에서 영광이 의미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의미가 있었다면 그건 왜일까. 이 둘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차 편안하게 둘만의 관계가 시작된다. 함께 영광도 소거된다. 영화가 끝난 다음, 완전히 영광이 소거된 이 두 사람의 산책이 궁금해진다. 아마 이 둘의 이 산책은 처음이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안보영 / 서울독립영화제202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