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필터가 철회됩니다.”

서울독립영화제2020 (제46회)

본선 단편경쟁

김민정 | 2020 | Documentary, Experimental | Color+B/W | DCP | 11min 35sec (K, E)

SYNOPSIS

해안 동굴 진지들과 여러 오름들에 위치한 벙커 등 수많은 식민지의 흔적과 함께 항쟁과 학살의 기억을 가진 풍경은 제주섬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 작업은 동굴 속에서 바깥 풍경을 캔버스와 겹쳐 바라본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1935)을 원전으로 삼고 홀리스 프램튼의 <강연> 스크립트를 일부 인용하여 작업 전체의 목소리가 되게 한다. 스크린이자 카메라 렌즈로서 작용하는 동굴과 벙커의 풍경을 찾아다니며 매체를 통하여 역사적 상흔을 가진 풍경이 있는 그대로 포착될 수 있는지, 또는 그대로의 색깔을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질문하고, 근본적으로 매체를 통해서 보거나 보여 주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DIRECTING INTENTION

제주의 일제 동굴진지와 4.3과 관련된 동굴들, 그 동굴이 품은 바다 이미지를 다각도로 들여다보았다. 밖에서 동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검고 어두운 카메라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그 안에 들어가서 밖을 보면 동굴의 입구 형태만큼 스크린이 되었다. 그 안에 숨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고 그들에게 허용된 바깥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동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은 극장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행위 같았다. 그리고 동굴이 카메라의 내부가 된다면 그 입구에 어떤 필터를 위치시키는가에 따라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다른 색깔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실험 영화 감독인 홀리스 프램튼이 <강연 A Lecture>에서 말한, 영사기의 게이트 앞에 놓인 레드필터는 우리가 붉은색을 더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란색과 초록색을 덜 보게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제주가 가진 역사적 사건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FESTIVAL & AWARDS

2020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0 제20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한국구애전 최고구애상
2020 제17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코리안 엑시즈 어워즈

DIRECTOR
김민정

김민정

 

2015 오스트레일리안 페이퍼
2016 푸티지
2017 (100ft)

 

STAFF

연출 김민정
제작 신경숙
촬영 김민정
편집 김민정
음악 김혜연

PROGRAM NOTE

<“레드필터가 철회됩니다.”>는 영화 매체의 특성과 영역을 탐구했던 감독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의 퍼포먼스인 <강연 A Lecture>을 인용한다. <강연>의 주제 중 하나는 빛으로 구성된 영화의 고유한 이미지 재현 방식으로서, 김민정 감독은 그중에서도 ‘적-청-녹’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의 성격에 주목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레드필터가 철회됩니다.”란 문장 역시 이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홀리스 프램튼은 프로젝터 앞에 붉은색 셀로판지를 올려 스크린을 붉게 물들이는 간단한 행위를 통해 우리 눈앞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 같았던 이미지가 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질문한다.
여기에 감독은 제주도의 특정 풍경을 몽타주하며 또 하나의 맥락을 더한다. ‘레드’가 은유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미지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이 만들었던 군사기지, 4.3사건 희생자들의 무덤 등이 연달아 등장하는 가운데 감독은 우리가 현실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묻는다. 즉 그동안 익숙하게 생각했던 이미지 위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레드필터’가 씌워져 있었던 건 아닐까? 나아가 이 질문은 비단 제주도의 특별한 사례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세계를 지각하는 우리의 조건 자체를 되돌아보게 이끈다.

김보년 / 서울독립영화제2020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