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공의 밤

서울독립영화제2015 (제41회)

본선경쟁 단편

송현정 | 2015 | Fiction | Color | HD | 21min 21sec

SYNOPSIS

빚만 남겨두고 간 남편 대신 빌딩 외벽 청소를 하는 정순과 정력제를 파는 텔레마케터인 정순의 엄마는 서로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

DIRECTING INTENTION

벗어날 수 없는 도시의 욕망을 그리고 싶다.

FESTIVAL & AWARDS

Premiere

DIRECTOR
송현정

송현정

STAFF

연출 송현정
제작 송태종
각본 송현정
촬영 권순경
편집 오윤석
조명 최재용
음악 이승훈
미술 구양욱
출연 김소숙 박정민 마정필

PROGRAM NOTE

 
노년의 엄마 경자와 무능력한 남편을 둔 딸 정순의 하루는 모질고 혹독하다. 엄마 경자는 주위의 노인들에게 성기능 식품을 판매하고, 정순은 고층빌딩 외관 청소부인 로프공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일용노동자로 살아가는 이 모녀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결코 편안한 안식을 찾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남성 고객들의 비위를 이리 저리 맞추다가 자연스럽게 성적 대상이 되는 경자나 위험하게 빌딩에서 로프를 타며 남자들과 함께 경쟁해야 하는 정순은, 사회에서 그들만의 사적인 공간조차 잃어버린 듯하다. 게다가 책임감 없는 남편이 잠시 돌아와도 정순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남편이 잠든 사이 홀로 술을 마시는 정순과 “피곤타”라고 짧게 내뱉는 경자의 밤은 처량하기만 하다. 한밤 중에 평상에 함께 누워 있는 모녀의 모습(닮은꼴)은,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도시 유목민의 고달픈 운명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시간과 정글(생존)의 법칙 안에서 쉴 새 없이 공전하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 모녀는 어느 빌딩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유리창 안의 경자는 텔레마케팅으로 상품을 팔고, 밖의 정순은 로프에 매달려 유리창을 청소한다. 두 사람의 신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모녀의 세상살이는 ‘낮’에도 ‘밤’에도 녹록지 않다. 생명을 담보로 한 로프에서 내려온들 인생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은 변함 없다. 성차별과 계급차별을 모두 받는 노동계급 여성들은 고층빌딩(발기한 성기 같은 자본의 상징)에서 힘 없는 약자로 머물고 있다. 오늘도 퇴근하는 그녀들의 뒷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섣불리 그녀들을 위해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종착점이 없는 그들의 인생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전종혁/서울독립영화제2015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