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

서울독립영화제2009 (제35회)

장률 감독 특별전

장률 | 2005|Fiction|35mm|Color|109min

SYNOPSIS

중국 변방, 아들 창호와 함께 고향 갈 날만을 기다리며, 조선족 최순희는 삼륜차를 이리저리 끌며 할퀴듯 스치듯 지나가는 상처들을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 조선김치를 팔며 하루 하루를 근근히 살아간다.

DIRECTOR
장률

장률

2001 < 11세 >
2004 < 당시 >
2005 < 망종 >
2006 < 사실 >
2006 < 경계 >
STAFF
PROGRAM NOTE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언어와 문화이다. 이것이 사라지게 되면 그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재외 동포들이 언어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손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다. 이들이 공통으로 소통하는 하나의 길은 바로 그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아들 창호와 함께 고향 갈 날을 기다리는 조선족 최순희는 이렇게 아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친다. 망종이라는 24절기 중 한 시기는, 한 해 중 농사를 지을 때 가장 바쁜 때이다. 도시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일손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때가 바로 망종이다. 고향을 그리며 사는 이들에게 망종은 고향을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시기이기도 하다. 김치를 팔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순희도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지만, 아들의 물음을 통해, 아들이 조선말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고향을 다시 떠올린다.
프레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벽은 <당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다. 순희는 유부남 김씨와 만나서 사랑을 하지만, 그의 부인에게 현장이 발각되어 경찰에 연행된다. 김씨는 돈을 주고 순희와 만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경찰관 왕은 순희의 석방을 미끼로 섹스를 요구한다. <망종>에서 섹스는 소통의 수단이자 절박한 생계의 수단이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매춘 여성들에게 섹스는 그야말로 생계의 수단이며, 순희는 아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경찰서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절망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최순희에게도 희망이 남아있다. 순희는 영화의 마지막에 기차역을 지나 보리밭을 향해 뛰어 나간다. 최순희는 어디로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돌아와서 있다. <망종>의 희망은 순희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것에 있는 것이리라.

김수현/서울독립영화제2009 해외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