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것들
서울독립영화제2005 (제31회)
단편경쟁
김재식 | 2005 | Fiction | HD | Color | 25min
SYNOPSIS
코앞에 다가온 전시회 준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정호는 꽤 이름난 도예가다.
제사를 위해 큰 형의 집으로 오던 정호는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아버지 희중씨를 만난다.
정호가 왜 나와 있냐고 묻지만, 아버지는 물음에 대답도 없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정호는 희중씨를 따라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동선에 함께 한다.
희중씨는 동네 근처의 오징어횟집으로 들어가는데, 정호는 그런 회집을 처음 보는 것 같다. 오징어 회를 기다리며, 희중씨는 젊은 시절 남극에 갔던 이야기를 하는데, 정호는 아버지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해버린다.
그 후에 희중씨는 이발소를 거쳐 공원으로 간다. 정호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희중씨는 정호가 안중에도 없는 듯, 말없이 벤치에 앉아 연못의 수면만 바라본다. 공원을 나온 희중씨는 또다시 근처의 포장마차로 들어간다. 정호는 짜증을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간다. 포장마차 안에서 순대를 썰던 곱상한 윤여사와 걸쭉한 농을 주고받는 아버지의 모습에 정호는 마침내 폭발하듯 화를 내지만, 되려 따지는 포장마차 윤여사의 말에 주눅이 들고 만다.
순대 한 봉지를 사서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온 정호.
제사를 치르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던 정호는 둘째형 정식에게 희중씨가 남극에 갔던 적이 있었다고 말하자, 정식은 거짓말이라며 웃고 만다. 그때 정식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방에서 낡은 신문종이로 말아놓은 막대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칼싸움을 하다가 집어던지는데, 그 종이막대를 펼쳐본 정호의 눈에 희중씨가 설원에서 찍은 낡은 남극사진이 보인다.
DIRECTING INTENTION
살면서 서로 비비고 닳아지며 접촉하는 모든 것은 서로 간에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관계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 소통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상대를 망각하게 되고 그 순간, 관계는 소멸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 관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복원시키기도 한다.
독특하게도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은 때로 이 관계라는 매개에서 자유롭다. 서로에게 가장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때로는 냉정하리만치 무관심하기도 하다.
‘몰랐던 것들’은 언어수단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이며, 그것이 상호 소통이다, 라는 전제로 그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의 영화다.
FESTIVAL & AWARDS
2005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DIRECTOR

김재식
STAFF
연출 김재식
제작 김유석
각본 김재식
촬영 나희석
편집 배예은
조명 차상균
음향 서영준
음악 정말로
출연 최승일, 공호석, 김희정, 조윤진
PROGRAM NOTE
도예가인 막내아들이 우연히 아버지의 외출에 동행하면서 아버지의 몰랐던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믿거나 말거나 무용담을 풀고, 포장마차 여주인에게 수작을 거는 아버지. 그런 모습이 아들에게는 당혹스럽고 생소하다. 아버지와 동행한 외출에서 아들은 아버지로써가 아닌, 특별할 것도 없는 황혼기 노인의 모습을 본다. <몰랐던 것들>은 가족간의 소통 부재에서 시작된다. 근대화의 가부장적 가족 개념 속에서 아버지는 남자인 한 개인으로써 보다는 가장이라는 고유대명사처럼 자식들에게 이해되어 왔다. 불혹이 넘은 아들은 자신의 울타리를 완성한 후에야 가장으로써도, 남자로써도 설 자리를 잃고 늙어버린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이 영화처럼 힘없이 늙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식과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횟집 주인장과 동네 이발사, 포장마차 여주인처럼 솔직하고 편안한 자세로 가식없는 대화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항상 그렇듯,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을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윤영호 / 서울독립영화제2005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