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서울독립영화제2012 (제38회)
본선경쟁(단편)
안진우 | 2012 | Fiction | Color | HD | 16min
SYNOPSIS
질병, 가난, 고독에 시달리며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직 목수 출신 독거노인 황석호. 초라한 병풍 앞 텅 빈 제사상 위에 놓인 할머니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황석호. 그는 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폐목을 수집하는가?
DIRECTING INTENTION
대화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혹은 외로운지 아세요?
FESTIVAL & AWARDS
2012 제6회 대단한단편영화제
2012 제8회 부산디지털콘텐츠유니버시아드
DIRECTOR

안진우
2008 <사랑>
STAFF
연출 안진우
제작 YA incorp
각본 안진우
촬영 김동혁
편집 권오현
미술 정현철
동시녹음 김영문, 고동균
색보정 정수정
출연 오수현, 김종태
PROGRAM NOTE
고요하다. 말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말할 사람이 없어.
노인은 왜 나무를 베려고 했을까?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과묵한 노인의 일상을 따라간다.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무용한 노동의 노력과 무기력한 산책의 결과는 숲 속 빈터에서 태어나는 하나의 침잠. 아내의 제사상과 12일이라는 기일. 그리고 준비. 중계동 28번지 전기세 미납요금은 4개월 합계 32,610원. 노인은 계속 라면을-라면만을 먹는다. 기이한 탈선에 따라붙는 우연한 기회. 일당 3만 원이 만들어 주는 마지막 제사상.
흰 종이 위에 지도를 그리는 노인과 그 길을 따라가는 노인의 행동이 교차된다. 지도의 마지막에는 작은 봉분이 그려지고 숲 속 호젓한 공터에는 구덩이와 봉분이 준비된다. 노인의 바람은 이루어질까? 농약을 마신 노인이 스스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간다. 노인의 자유 의지는 타인을 향해 있지만 그 오해는 노인의 기대가 닿을 길을 열어 두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으로 성사되지 못할 소원으로 그칠 것만 같다. 밖에서 노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은 자신의 이름을 단 한 번 발설하고 관속으로 들어간다. 단전.
죽음 부근이거나 생존의 끄트머리에 놓인 혼자 사는 나이 든 남자의 마지막 자유 의지에 대한 관찰은 몹시도 차분하게 절제된 상태로 주관적이다. 버려지는 것들로 연명하는 버려져야 하는 때가 된 삶의 외로움은 반복적인 몽타주로 내적인 굴곡을 만들어 낸다. 세 번 반복되는 그 주름은 일련의 문채를 발하기도 한다. 당김과 여밈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배울 게 많다.
하지만 왜일까? 타인의 삶이, 타인의 죽음이, 타인의 인생이 서사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늙지 않음이 소멸을 말하려는 아이러니 탓일 게다. 에필로그로 쓰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집의 箱을 둘러싼 곰팡이처럼 소재라는 영화적 훈습의 곰팡이가 무관한 익숙함으로 우리 삶의 그늘에 창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간절하게 피어나는 하나의 블랙아웃은 청춘이 불타 사라지는 걸 보고 싶다는 사사로운 생각이다.
이난/서울독립영화제2012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