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러비

서울독립영화제2004 (제30회)

단편경쟁

김성길 | 2003 | Animation | Beta | Color | 10min 59sec

SYNOPSIS

소년이 한 소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때부터 소년의 머리 속은 소녀로 꽉 차게 된다. 어느 날 소녀가 그에게 성의 없이 애러비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소년은 해버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는 소녀의 관심을 사고 싶어서 애러비에 집착한다. 결국 도착했지만 소년의 눈에는 고작 반쯤 내려진 휘장과 문을 닫은 대부분의 상점과 불이 켜진 가게에서의 남녀의 노닥거림 뿐이었다. 소년은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허영에 내몰린 듯한 자신에 대한 분노로 고뇌한다.

DIRECTING INTENTION

제임스 조이스의 원작 "더블린 사람들" 중 "애러비"를 한국적 배경과 정서로 각색하여 제작했다. 애러비에 사용된 중요한 메타포 중 하나는 사랑과 애러비의 관계다. 사랑과 애러비 그리고 소녀는 동일선상에 위치한 상징적인 의미이다. 애러비 바자에 대한 환영이 소년이 가진 소녀에 대한 사랑의 환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소년은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성장이다. 그 성장의 맨 처음을 담아내고 싶었다.

FESTIVAL & AWARDS

CBS 영상제 우수상

DIRECTOR
김성길

김성길

STAFF

연 출 김성길
제 작 김성길
각 색 김성길
디자인 김성길
애니메이션 김성길
음악 이소영
사운드 이소영

PROGRAM NOTE

만약 추억, 그 중에서도 첫사랑의 추억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까? 일곱 색깔 무지개 같은 화려한 총천연색 보다는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조금은 빛바랜 색에 가깝지 않을까?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3D 애니메이션 <애러비>가 담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런 어린 시절, 빛바랜 첫사랑의 기억이다. 소년은 짝사랑하는 누나를 대신해 애러비에 간다. 하지만 잔뜩 기대를 품고 간 소년은 너무 늦게 도착했고 곧 그곳이 상상처럼 화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곳임을 깨닫게 된다. 첫사랑의 추억도 이와 같은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오고 감히 다가가 말을 걸기도 두렵지만 돌아서면 그런 자신이 한없이 바보처럼 느껴져 왠지 모를 서글픔과 분노, 자괴감에 젖어 드는 것. 애러비 바자에서 홀로 돌아오며 씁쓸하게 창밖을 내다보던 소년의 심정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의 끝에서 소년은 아마도 한 뼘 정도는 자라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년은 애러비에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도착했던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성장기의 달콤 씁쓰름한 기억, 영화는 원작의 배경인 1900년대 아일랜드 대신 7~80년대 분위기가 물씬한 이 땅의 소도시로 옮겨 이러한 정서의 보편성을 더욱 강조한다. 기술적인 면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물론 단점과 아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3D 캐릭터의 비교적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회화를 연상시키는 무채색의 부드러운 배경 묘사 등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화면이 눈길을 모은다.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80년대를 연상시키는 향수어린 분위기와 최근 애니메이션계의 대세인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독립 단편 진영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모은영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